여름입니다. 선풍기와 에어컨이 돌아가고 대낮 소나기는 ‘스콜’처럼 쏟아붓습니다. 땀에 젖은 추억들이 떠오르는 여름입니다. 감염병 위협이 있기 전 거닐던 치앙마이 거리가 그려지고, 걷다 지쳐 노천카페에서 마시던 속시원한 과일주스도 추억이 됩니다. 땀범벅이 된 제주 올레길에서 해녀들이 썰어내온 뿔소라에 차디찬 소주를 마시던 기억도 소환됩니다. 바람 불어드는 밤 창가에 걸터 앉아 맥주에 곁들이던 재즈 선율도 귓가에 울리는 듯합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훅하고 덮쳐오는 이때, 바다와 푸른 하늘과 파라솔과 시원한 음료, 그리고 삼매로 빠져들게 하는 소설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소설은 늘 양식이었습니다. 바다와 푸른 하늘이 없어도 숨가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편안했습니다. 휴가를 기다리며 기나긴 출퇴근에 지쳐가던 지하철 찻간에서 펼쳐든 김영하와 윤대녕, 최인훈과 박상륭, 공지영과 신경숙은 일용할 양식처럼 든든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폴 오스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읽을 땐 여행길이라도 되는 양 들떴습니다.
편안한 휴식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휴식(休息)이란 한자를 우연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무(木)에 기댄 사람(人)에 더불어, 자연스럽게(自) 마음(心)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 놓고 나무에 기대어 쉬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나무 기운을 받아들이고 숨을 내뱉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합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쉼의 과정이 휴식이라는 것입니다. 바다가 아니어도, 숲이 아니어도, 책과 함께 떠나는 여정이 허락되는 순간은 휴식 시간이 아닐까요.
아차, 올해는 휴가철이 개시되기도 전에 늦장마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책과 함께하는 진정한 휴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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