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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조선시대 살인사건으로 비화한 유유의 가출

등록 2021-07-02 05:00수정 2021-07-02 09:10

16세기 균분상속서 장자 우대로 바뀌는 과정 깔린 사건
임금·대신 논쟁까지 비화, 이항복 ‘유연전’은 공분 사기도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권내현 지음/너머북스·2만3000원

유유는 16세기 조선, 대구의 양반가 자제다. 그는 이항복을 비롯해 당대 지식인들이 남긴 각종 문헌과 책에 등장하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이는 1556년 그가 감행한 가출에서 비롯됐다. 유유가 집을 나간 이유는 가정불화와 우울증쯤 되겠다. 주변 증언에 따르면, 그는 현감을 지낸 아버지 유예원과 갈등이 잦았고 결혼한 지 3년 된 아내 백씨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심질(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던 유유가 6년 만에 발견된다. 유유를 찾은 사람은 달성군 이지인데, 세종대왕을 고모부로 둔 왕족으로 유유의 자형(누이의 남편)이었다. 이지는 처가에 “가출한 유유가 해주에서 채응규라는 이름으로 새 아내(첩) 춘수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가 친척들이 연이어 유유를 방문하고 동생 유연도 기대에 부풀어 형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유유가 몰라보게 변했다. 6년 새 키가 크고 체구도 커졌다. 작고 누르스름하고 수염이 없던 얼굴이 크고 검붉은 수염투성이로 바뀌었다. 가늘던 음색이 굵고 쩌렁쩌렁해졌다. 채응규는 정말 유유일까? 의견이 둘로 갈렸다. 그를 처음 발견한 이지와 유유를 먼저 만난 몇몇 친척들은 “풍상과 추위, 배고픔에 시달려 얼굴이 달라졌다”며 채응규는 유유가 맞다고 했다. 반면 동생 유연은 채응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가 가짜라는 심증을 굳히고, 노비들을 시켜 포박한 다음 대구 관아로 끌고 가서 수령 박응천에게 진위를 가려달라고 했다.

옥에 갇힌 채응규는 아내 백씨와의 첫날밤 기억까지 들추며 자신이 유유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유력 증인인 아내 백씨는 유유를 만나지 않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 사이 유유의 첩 춘수는 건강악화를 이유로 유유의 보방(보석)을 요청했는데, 결국 보방이 허락되어 감옥에서 나온 유유가 며칠 뒤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처음에 사람들은 채응규가 가짜 유유라는 사실이 밝혀질까봐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유유의 첩 춘수와 아내 백씨가 “유연이 재산이 탐나 형 유유를 살해했다”고 고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가출사건이 사기사건이 되었다가, 이제 살인사건이 된 것이다! 

옥살이를 하게 되면 식사와 세탁 등의 비용이 모두 투옥자의 몫이었기 때문에 유유(채응규)의 첩인 춘수가 옥바라지를 했다. 그림은 김윤보의 <형정도첩> 중 수감된 죄인에게 가족이 음식을 넣어주는 모습. 너머북스 제공
옥살이를 하게 되면 식사와 세탁 등의 비용이 모두 투옥자의 몫이었기 때문에 유유(채응규)의 첩인 춘수가 옥바라지를 했다. 그림은 김윤보의 <형정도첩> 중 수감된 죄인에게 가족이 음식을 넣어주는 모습. 너머북스 제공

사건의 정황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유유의 가계도를 살펴보자. 유유의 아버지 유예원에겐 아들이 셋, 딸이 셋 있는데, 장남 유치 부부는 사망했고 둘째 유유는 백씨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가출했다. 그래서 유예원이 사망하자 셋째 아들 유연이 집안의 대표가 되어 상장례를 주도했다. 춘수와 백씨의 주장은 “유유가 돌아와 집안의 대표가 되어 더 많은 유산을 받을 것을 우려한 유연이 자신의 입지를 지키려 유유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의 저자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면 당시가 균분상속에서 장자우대 상속으로 변화하는 시기였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 전기의 상속제도는 아들 딸 모두에게 고루 재산을 나눠주는 ‘균분상속’이었고, 제사는 자녀들이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봉사’를 따랐다. 다만, 자손 중에 과거에 합격하거나 관직을 제수 받은 사람에게는 재산을 조금 더 상속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별급’이라 했다. 그런데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장남과 장손에 대한 별급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딸들이 제사에서 배제되고 재산상속도 받지 못하게 됐다. 권 교수는 이런 변화가 “균분상속이 재산 감소를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전체의 토지와 노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조선 초기에는 부모로부터 각기 균분상속을 받은 남녀가 결혼하면 재산 증식이 가능했으나, 조선후기로 가면서 경제규모가 한정된 상황에서 세대를 거듭해 균분상속을 하다 보면 상속재산이 계속 줄어든다”는 것이다. 결국 17세기 이후에는 가문의 재산과 제사를 장자에게 몰아주는 장자우대 상속이 보편적으로 자리잡았다. 

1570년 제주에 사는 김두년이 다섯 자녀에게 재산을 골고루 분급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경주 양동 경주 손씨 서백당 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문서자료관 제공
1570년 제주에 사는 김두년이 다섯 자녀에게 재산을 골고루 분급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경주 양동 경주 손씨 서백당 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문서자료관 제공

유유 사건은 16세기, 여전히 균분상속이 주류일 때 발생했다. 실제로 유예원은 생전에 집안일을 맡아 하는 셋째 유연에게 재산을 먼저 조금 상속하고, 나중에 아들 딸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그렇다면 용의자는 동생 유연만이 아니다. 유유가 사망하면 상속분이 커지는 건 모든 형제자매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가출한 유유를 처음 발견한 달성군 이지는 이 집안의 사위이므로 그 역시 얼마든지 유유 사망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유연은 의금부로 끌려갔다. 사욕을 채우기 위해 동생이 형을 죽이는 건 ‘강상죄’에 해당하고, 강상죄는 임금이 직접 사형을 명하는 것이 유교의 나라 조선의 법도였다. 유유 사건은 의금부와 의정부와 사헌부가 합동으로 처리하는 ‘삼성추국’ 수준으로 커졌고, 임금과 대신들이 사건의 진위를 놓고 논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유유의 귀환, 조선의 상속>은 유유 사건을 큰 줄기로, 당대의 문집과 서적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조선 상속제도의 변천사와 구체적인 실상을 옛이야기 들려주듯 술술 풀어낸다. 채응규의 실종을 계기로 사건이 민사에서 형사로 바뀐 후에는, 조선의 형벌제도와 사법제도로 범주를 넓혀 이에 얽힌 삶의 모습을 사극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들려준다.

동생 유연이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고도 아직 이야기는 한참 남았다. 뜻밖의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유연은 정말 형 유유를 죽였을까? 한 가지 귀띔하면, 당대의 석학 이항복은 사건이 종결되고 10여 년이 흐른 뒤 당시의 일을 유연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소설 <유연전>을 발표해 수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1607년 이항복은 유연의 아내 이씨의 집에 내려오는 자료를 모아 &lt;유연전&gt;을 펴내고, 유유 사건을 새롭게 조명했다. 너머북스 제공
1607년 이항복은 유연의 아내 이씨의 집에 내려오는 자료를 모아 <유연전>을 펴내고, 유유 사건을 새롭게 조명했다. 너머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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