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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멍씨의 디데이

등록 2021-07-09 04:59수정 2021-07-09 10:14

살리려는 자는 주변과 동화되는 방식으로 숨고, 죽이려는 자는 주변과 동떨어져 위장하는 방식으로 숨는다. 고로 최선의 위장은 완벽한 변장에 달려 있지 않다. 그 차이를 아는 순간 나는 테러방지팀 요원의 사명을 체화했다.
일러스트 이민혜
일러스트 이민혜

“멍씨, 안녕?”

서울역 2번 출구 앞에서 하필 정임 씨를 만났다. 오늘도 커다란 장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삼십 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도 겹겹이 껴입은 차림이다. 나와 비슷한 행색이지만 나와 정임 씨는 엄연히 다른 신분이다.

나는 테러방지팀의 위장 노숙자다. 정확한 소속을 밝힐 순 없지만 서울역 앞 광장, 이곳이 나의 본거지이다. 적과 마찬가지로 신원을 알 수 없는 나의 동료들이 서울 곳곳에 숨어 있다. 내 정체를 알 리 없는 정임 씨는 온종일 멍한 표정으로 길 건너편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다고, 나를 멍씨라고 부른다.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할 생각으로 정임 씨의 인사를 못 들은 체하며 속도를 높였다.

“한여름인데도 멍씨 얼굴은 참 뽀얗다.”

정임 씨가 잽싸게 달려와 말을 걸었다. 그러고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더니 두 팔로 꼭 감싸 안았다. 아기를 재우는 듯 살며시 토닥이며 정임 씨가 의뭉스레 물었다.

“어디 좋은 데서 자는가 봐?”

수다쟁이 정임 씨는 이곳에서 보기 드문 ‘인싸’다. 광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다른 노숙자들과 달리 정임 씨는 오로지 ‘식’만 해결한다. 무료급식소에서 도시락을 나눠주는 시간에 때맞춰 오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정임 씨의 일과다. 타칭 노식자, 자칭 안숙자. 왜 노식자가 아니라 안숙자냐고 물었더니 더는 길바닥에서 ‘숙’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렇다고 했다. 그 안이 그 안은 아닐 텐데요? 괜히 아는 체를 했다가 여기 오기 전에는 뭐 하던 사람이었냐고 꼬치꼬치 묻는 바람에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정임 씨의 논리대로라면 나야말로 진짜 ‘안숙자’인 셈이다. 하고많은 선택지 중에서 내가 굳이 노숙자로의 위장을 택한 것도 실은, 가장 흉내 내기 쉬워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노숙자로 위장하는 게 싫다면 가판대나 트럭을 빌려 먹거리를 팔 수도 있고,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트 차림의 남자가 될 수도 있었다. 재주가 있었다면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거나 스피커와 확성기를 달고 쉼 없이 떠드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임들의 말을 들어보니 허우대가 멀쩡할수록 일은 고됐다.

회사원으로 위장한 누구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매일 횡단보도를 수십 번씩 건너며 돌아다니는데 길바닥에 맘껏 앉지도 못한다고 들었다. 오로지 스타벅스 광화문점 2층에서나 숨을 돌릴 수 있는데, 그마저도 한 시간을 못 넘긴다고 했다. 용산역 앞에서 계란빵 장수로 잠복하고 있는 누군가는 겨울마다 근태 점수가 엉망이라고 했다. 감찰은커녕 온종일 계란빵을 굽느라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어서 요로결석 제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다고 했다.

결국 고심 끝에 고른 게 노숙자였다. 노숙자는 광장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어도 근태 평가에 별 지장이 없다. 노숙자들의 환심을 사는 일이 어렵긴 해도 소주 한 병을 들고 어슬렁거리다 보면 누군가는 반드시 말을 건다. 정임 씨와도 오래전 그렇게 말을 텄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노숙자들과 어울리다 보면 전에는 뭐 하며 살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더러 있다. 구직에 실패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쌓인 도박 빚을 갚지 못해 실종자 신세가 되었다는 게 이곳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의 스토리다. 정임 씨도 이미 다 아는 스토리였다.

“멍씨는 주말마다 뭐 해? 항상 주말에는 없더라.”

“교회 가요.”

“용돈 받으러?”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느 날이었다면 정임 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줄기차게 화답했겠지만, 오늘은 디데이다. 테러방지팀 요원인 나에게는 브이아이피(VIP)의 목숨이 곧 내 목숨이다. 문제는 내 목숨 줄을 쥐고 있는 VIP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오늘은 VIP 중의 브이브이아이피(VVIP)인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 나로서는 죽기를 각오한 날이다.

지금쯤 VVIP는 어디쯤 왔을까.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출발해서 광화문과 남대문을 거쳐 서울역을 지나 용산 캠프로 가는 동선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아무리 방탄 차량이라지만 요즘은 첨단무기의 화력도 만만치가 않다. 무엇보다 나를 사찰 중인 감사요원들의 눈에 찍혀 해고라도 당한다면 조만간 나도 노식자나 노숙자가 될지 모른다. 그러니 서울역 반경 2킬로미터 내에서는 절대로 어떤 일도 벌어져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대의는 테러를 예방하지 못하면 VIP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테러로부터 가장 안전한 국가들 중 하나라는 게 말이다. 그래서 문제다. 설마설마하면서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근무하다 보면 정임 씨의 말대로 멍만 때리다가 슬금슬금 퇴근하게 된다. 그런 날이면 이렇게 노숙자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근무 초창기 때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변장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카멜레온처럼 완벽한 위장이 내 임무의 관건이자 능력이라고 믿을 때였다. 의욕이 넘친 나머지 네이버의 지식인에 카멜레온의 특징에 대해 알려달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이디가 히어로넘버원이라는 자가 곧바로 답변을 달았다.

카멜레온은 혼자 살며 외로움을 타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어서 다른 특징은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짧은 답변이 달렸다.

혀가 깁니다.

그 순간 긴 혀로 순식간에 파리를 낚아채는 카멜레온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연히 상상만 했던 테러범들의 존재가 그제야 실감 났다. 입사한 지 얼추 5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여태 테러범을 맞닥뜨린 적이 없다. 완벽한 위장을 특기로 삼으려 했건만, 보아하니 그것은 나의 본분이 아니라 적의 본분이었다. 살리려는 자는 주변과 동화되는 방식으로 숨고, 죽이려는 자는 주변과 동떨어져 위장하는 방식으로 숨는다. 고로 최선의 위장은 완벽한 변장에 달려 있지 않다. 그 차이를 아는 순간 나는 테러방지팀 요원의 사명을 체화했다.

동화, 그것이 위장의 궁극이고 내가 정임 씨를 함부로 내치지 못하는 이유다. 정임 씨는 인싸답게 행인들에게 무람없이 말을 걸어 푼돈을 받아낸다. 그 돈으로 술을 사서 도시락을 안주 삼아 몇몇이 무리 지어 할 일 없는 오후를 취한 채로 보낸다. 종종 나도 그 무리에 끼어 술을 마시거나 술을 산 적이 있다. 일종의 동화 프로젝트였달까.

곧 정오다. 예상대로라면 30분 후에 VVIP의 차량이 서울역 앞을 지난다. 나는 어떻게든 정임 씨와 멀어지려고 롯데마트 앞 계단 쪽으로 바삐 걸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재빨리 곁눈질로 주위 빌딩들을 살폈다. 한여름, 빌딩들의 창문은 죄다 닫혀 있고 선팅이 짙은 유리창의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수상한 기미가 포착되지 않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이곳 빌딩들은 너무 높아서 목표물을 조망하고 숨은 요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최적이다. 게다가 그들이 나보다 먼저 당도해서, 이곳에 동화된 채로 총구를 정비하고 있을 가능성을 떨칠 수가 없다.

다행히 주변 빌딩들의 옥상은 일주일 전부터 폐쇄조치가 되었으니, 남은 위험요소는 빌딩의 창문들이다. 빌딩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문할 순 없는 노릇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수상한 자들이 수상한 일을 벌이기 전에 잡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창문이 너무 많다. 셀 수 없이 많다. 이 많은 창문 중 단 하나가 고작 1센티미터만 열려도 상황은 달라진다.

“줄 안 서고 어딜 가?”

정임 씨가 고갯짓으로 급식소를 가리켰다.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무료하게 서 있다. 그들은 대개 빈손이다. 저 자리에선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들의 행렬 때문에 도로 상황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굳이 저들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단 뜻이다.

“오늘은 안 먹으려고요.”

“용돈 많이 받았구나. 나도 좀 얻어먹자.”

나는 한시가 급했다. 건너편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를 당장 찾아야만 했다. 정임 씨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졌다. 바지 뒷주머니에 든 지갑을 꺼냈다. 정임 씨가 보지 못하게 뒤돌아서서 지갑을 뒤졌다. 제기랄, 오만 원짜리 한 장뿐이었다. 셔츠와 점퍼 주머니를 남김없이 뒤져도 아무것도 없었다. 점퍼 속주머니에 든 권총만이 묵직하게 잡혔다. 별수 없이 오만 원짜리 지폐를 건넸다.

“오만 원짜리 오랜만에 본다.”

정임 씨가 신기한 듯 오만 원의 앞뒤를 살펴보더니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남겨?”

“네?”

“사만팔천이백 원, 남겨 오냐고?”

소주 한 병 사고 남은 돈은 어찌하냐는 뜻이었다. 나는 선심 쓰듯 고개를 저었다.

“어느 교회야? 나도 거기 데려가라.”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갈 줄 알았던 정임 씨가 돈만 챙기고 죽칠 태세다. 이대로 더 붙잡혀 있다가는 큰일이었다. 광장 시계를 보니 벌써 20분 전이었다.

“급해요, 급해.”

나는 바지춤을 붙잡고 화장실을 가는 체하며 뒷걸음질 쳤다. 저 멀리에서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 없음, 오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이상 없음이라고 보고했지만, 오전의 평화가 남은 20분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주머니에 든 권총이 움직이지 않게 가슴을 움켜쥔 채로 롯데마트와 서울역 2층을 잇는 공중다리를 향해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다리 한가운데 섰다. 15분 전이었다.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의 전원을 켜는 순간, 갑자기 지축을 울리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리 양쪽 끝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족히 열댓 명은 되어 보였다. 익히 알고 지내왔던 노숙자들이었다. 얼핏 무리 뒤쪽에서 정임 씨의 얼굴이 보였다.

“정임 씨? 아니 안숙자 씨?”

내가 그를 부르자마자 사람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억지로 나를 넘어뜨려 점퍼를 벗기고 주머니를 뒤지고 신발을 벗기는 동안 나는 발버둥을 치며 물었다. 누구야? 왜 이래?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내가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눈앞이 아득해졌다. 사지에 힘이 풀려 쓰러지기 직전, 저 뒤쪽에서 정임 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 없음. 이상 없음.”

황현진 소설가
황현진 소설가.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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