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새벽 세 시에 줌(ZOOM)에 접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 시간에 문을 여는 카페는 없었다. 새벽 세 시라니, 이 고요한 섬은 물론이거니와 도심에서도 새벽 세 시는 상당히 애매한, 밤의 한가운데였다.
고흥에서 배로 20분 거리에 있는 섬의 숙소 하나가 조용히 입소문을 내고 있었다. 전망이 특출난 것도 시설이 남다른 것도 아니었으나 유명한 아이돌 멤버 한 명이 거기서 디지털 디톡스를 했다는 고백을 한 뒤로 하나둘 찾아오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 숙소에서는 예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섬 안으로 일단 들어간 뒤에야 빈방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우리 셋은 운 좋게도 입실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틀을 묵기로 했고, 아침과 저녁도 숙소에서 먹는 것으로 신청했다. 이틀 동안 쓸 수건을 인당 두 장씩 받았고, 리넨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베갯보도 받았다. 숙소 주인은 여든 살 할머니였는데 목소리가 나이보다도 더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예약을 왜 따로 안 받으시냐고 물었을 때,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번복하는 꼴이 싫어서.”
반박할 수 없는 권위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음정보다도 속도에서 그 오래된 권위 같은 게 배어 나오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입실할 때 얘기했던 식사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세 명이 동시에 알람을 다섯 개씩 맞추고 잠들어야 했다. 미리 얘기했던 저녁 식사 시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두 밤뿐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우리는 속삭였다. 이곳은 와이파이도 제공하지 않고 티브이(TV)도 없으며 주변에 위락시설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투숙객이 휴대폰을 들고 오는 걸 막지는 않으나 이 섬 자체가 어떠한 연결이든 잘되는 편이 아니었다.
마지막 밤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미리 구매해 온 이 지역의 상품권이 아직 몇 장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밤이 지나간 뒤 주인이 차려주는 아침 식사를 하고 퇴실을 하면 배 시간이 될 테고, 하루에 한 번 있는 그 배를 타고 이 섬을 떠나면 바로 고흥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했다. 친구 하나가 말했다. “애매하게 남은 금액은 여기서 다 털고 가자. 티셔츠나 한 장씩 사는 거 어때?”
섬은 작았지만 해변의 가게 몇 곳에서 기념품을 팔았다. 우리는 거기서 같은 티셔츠를 세 장 샀고, 그걸 들고 돌아오던 길에 단호한 어조로 주인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번복하면 안 되지.”
그 앞에서 좀 낡아 보이는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사정을 얘기하고 있었다. 장황해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요약하자면 와이파이 연결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주인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 숙소에서는 와이파이 제공을 하고 있지 않고, 그걸 내세워 디지털 디톡스 여행이니 뭐니 하며 유명해진 건데 절대 와이파이를 제공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와이파이가 가능한 해변의 카페 두 곳을 소개해줬는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남자는 새벽 세 시에 줌(ZOOM)에 접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 시간에 문을 여는 카페는 없었다. 새벽 세 시라니, 이 고요한 섬은 물론이거니와 도심에서도 새벽 세 시는 상당히 애매한, 밤의 한가운데였다.
“축구 보려는 거구만.” 주인이 말했다.
“축구요?”
“새벽에 중요한 축구를 한다고 그러던데. 그거 보려고 그러는 거지. 여기
TV가 없으니까.”
남자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축구를 보려는 게 아니라 일의 연장선에서 할 업무가 있다고 했다. 주인은 업무 있는 사람이 여기 들어올 리가 있냐면서 느긋하게 굴었다. 우리 셋은 마치 다른 용무가 있는 것처럼 로비의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그 대화를 엿들었다. 그러다 한 명은 방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명도 들어갔고 나만 거기 남아 있게 됐다. 내 흥미와는 별개로 남자는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그의 구구절절 설명 끝에 주인이 아주 조금 빨라진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상을 받게 됐다는 거야? 해외에서 주는 상을?”
“그건 모르는 건데 받을지도 모르니까 시상식에 접속을 하라는 거거든요. 지금.”
“무슨 새벽에 시상식을 해? 새벽에 하는 건 축구밖에 없잖아.”
“그게 거기 시간은 그렇지 않은데 여기 시간은 그런 거거든요. 상을 탈 수도 있으니까 접속을 해두라는 건데. 제가 수상 소감을 말하게 될 수도 있다니까요.”
“공문이 왔어?”
답답해하는 남자에게 주인은 “이런 사람을 한둘 본 게 아니라서 그래. 이래서 입실할 때 동의했잖아. 우리 숙소에서는 인터넷이 안 된다. 나는 번복은 못 견뎌. 피곤해.”
결국 남자는 포기하고 숙소를 나가 앞뜰에 멍하니 서 있었다. 파도 소리 속에서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여기는 안 해주는 게 아니라 애초에 없어요. TV도 인터넷도 안 되는 거예요” 하고 말했다. 그는 “아, 그렇습니까” 하고는 자기는 이 숙소에 한 달째 머물고 있었고 그동안은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휴대폰을 잘 켜두지 않는 바람에, 연락을 오늘에야 받았고, 그 때문에 뭍으로 나갈 기회를 놓쳤다는 거였다. 배는 오전에 한 대만 있으니.
“해외에서 제 소설이 수상 후보에 올랐거든요.”
“아아. 그래서 시상식을 줌으로 한다는 거군요?”
“네. 새벽 세 시에 이 섬에서 어떻게 연결을 할까요. 진짜.”
그는 전반적으로 신뢰감을 주는 외모나 목소리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넝마 같은 민소매 티셔츠에 좀 꾀죄죄한 바지, 그리고 멀리 못 갈 것 같은 슬리퍼…. 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면 제 폰으로 하실래요? 줌 접속.”
그는 화들짝 놀랐다. 그의 폰은 이곳에서 잘 터지지도 않았지만 내 폰으로는 충분히 모바일 인터넷이 가능했다. 아마도 통신사마다 기기마다 다른 듯했는데 함께 온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독 내 폰만 인터넷 접속이 원활했다. 타인에게 폰을 빌려준다는 것은 결국 나도 그 시간에 깨어 있어야만 한다는 얘긴데, 다행히 나는 야행성이었다.
그는 야행성이 아니었다. 이 섬에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완전히 종달새 형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는 열 시에 잠든 그를 새벽 두 시 반에 깨워주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그의 방은 우리 방과 정반대 쪽에 있었는데, 새벽 두 시 반에 내가 친구와 그쪽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을 때 그는 이미 깨어 있었다. 그는 갈등하고 있었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폰까지 빌려서 이렇게 접속할 일인지.” 그의 말에 나는 상관없다면서 내 폰을 내주었다. 그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았다. 상을 탈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접속하게 해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노라고. 그때 친구가 “근데 얼굴이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줌이면?”이라고 물었고, 그는 “수상하게 된다면 그렇겠죠? 아니면 아니고”라고 대답했다. 친구가 그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더니 “상반신이라도 뭐 다른 티셔츠 없나요? 아니 너무 좀” 후줄근하단 얘기를 친구는 혀끝에서 조용히 녹였다. 그는 “좀 그렇지요? 여기에 한 달간 있다 보니” 하면서 주섬주섬했고, 나는 조금 전에 산 우리의 티셔츠 한 장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아니, 그냥 선물로 주었다. 그건 남녀 공용이었고, 그 어떤 옷이든 지금 그가 입은 것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그는 네 시쯤, 시상식이 끝나면 우리 방으로 폰을 가져다주기로 했다. 친구 하나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나와 함께 깨어 있었던 친구는 이제 막 잠들려고 하고 있었고 나는 늘 하던 방식으로 이 밤을 보내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두 손이 허전했다. 익숙한 도구가 지금 모르는 이에게 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야말로 오랜만에 디지털 디톡스를 즐기게 됐다. 주인이 한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주인의 말을 듣고 바로 검색해봤을 때 오늘 프리미어리그의 중요한 축구 경기 하나를 중계해주는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새벽 세 시에 시작하는. 그러나 그는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문학상 발표를 기다리며 다급히 선물받은 티셔츠를 입고 가까스로 빌린 휴대폰 앞에 단정하게 앉아 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윤고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