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봉·영국령 인도·동독의 출판 통제 ‘인류학적 분석’
호평·격려하기도 했지만 국가권력의 교묘한 검열 명백
호평·격려하기도 했지만 국가권력의 교묘한 검열 명백

로버트 단턴 지음, 박영록 옮김/문학과지성사·2만2000원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검열관이 로버트 단턴의 <검열관들>을 검열한다면 어떨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검열의 역사, 검열관의 일상에 대한 놀랍도록 생생한 묘사, 전문적인 내용을 재치 있고 매끄러운 필치로 엮어낸 매혹적인 책”이라고 극찬하지 않을까. 당시 검열관들이 공들여 쓴 출판 허가서는 오늘날의 서평이나 추천사 비슷했으니 말이다. 이 책이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인도에서 출간됐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1900년 이전이면 도서관 사서들의 서평 비슷한 의견이 첨부된 채 인도행정청이 작성한 도서목록에 수록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1900년 이후라면 단턴이 경찰에 쫓기거나 재판에 회부될 가능성도 있다. 죄목은 ‘영국령 인도에 사실상 출판의 자유가 없다’는 등의 내용을 적시해 대중을 선동했다는 것쯤 되겠다. 20세기 공산주의 동독이었다면, 아예 출간이 불발될 공산이 크다. 단턴은 원고 기획부터 시작해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분량은 물론 단어와 표현에 이르는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편집자와 끊임없는 ‘협의’를 거칠 테고, 이 과정이 검열의 역사를 통찰한 이 책의 집필의도와 상반된다는 생각에 출간을 포기하고 망명을 결심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칭찬 일색의 18세기 프랑스의 검열은 선이고, 협의라는 이름으로 작가를 옥죈 20세기 동독의 검열은 악일까? 아니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검열하는 쪽이 악이고 검열에 맞서 투쟁하는 쪽이 선일까? 그처럼 이분법적인 시각을 넘어, 그간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검열에 대한 ‘인류학적 분석’을 해보겠다는 것이 단턴의 야심찬 포부다. 그의 별명은 ‘책의 역사가’.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했고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 도서관장을 역임한 단턴은 6편의 저술을 통해 18세기 프랑스 문화를 새롭게 해석한 베스트셀러 <고양이 대학살>(1996·국내 출간 기준)을 비롯해 <책의 미래>(2011), <책과 혁명>(2014) 등 책과 출판이라는 프리즘으로 유럽사를 재조명한 저술로 이름이 높다. 단턴은 이 책에서 검열의 역사를 비교사적, 민족지적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특히 “검열이라는 용어에 집중하기보다 당대에 쓰였던 언어의 의미를 포착해 내고자” 했으며, “문화 체제의 기저에 깔린 분위기와 그 체제 내에서 (검열에 해당하는) 행위에 영향을 미치던 잠재적인 사고방식이나 암묵적인 가치관을 이해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를 위해 세 곳의 권위주의 체제를 집중적으로 살폈는데, 18세기 부르봉 왕조의 프랑스, 19세기 영국이 통치한 인도, 그리고 20세기 공산주의 동독이다. 이들 체제에서, ‘검열’은 각기 다른 용어로 지칭됐다. 18세기 프랑스에선 ‘특허’라는 말로 통용됐다. 책이라는 것이 ‘왕이 내린 은총의 산물’이었던 만큼 왕립행정기관인 서적출판행정청의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영국 왕실에 납품하는 잼 통이나 비스킷 상자”와 같이, 특허 받은 책은 질 좋은 제품임을 인정받은 셈이었고, 이를 승인하는 검열관은 품질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검열 과정을 거쳐 출간된 <아메리카 섬으로 떠나는 새로운 여행>(1722) 표지 맨 아래에는 “왕의 허가와 특허를 받았다”고 표기돼 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부르봉 왕조의 검열지시서. 1751년 2월28일에 작성됐으며, 검열관 보즈에게 <헤르쿨라네움 회화에 관한 편지>라는 원고를 검토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벵골지역에서 출판된 분기별 도서 목록. 도서 목록은 인도행정청의 보안문서로 회람됐으며, 저자와 출판업자를 선동죄로 기소할 때 활용되기도 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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