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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예술원은 뭐 하는 곳? ‘국민청원’이 소설이 됐다

등록 2021-07-20 12:00수정 2021-07-21 02:15

이 교수가 ‘예술원 비판’ 소설 발표하고 국민청원 나선 까닭은
이기호 작가. 채널예스 제공
이기호 작가. 채널예스 제공

소설가 이기호(49·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대한민국예술원을 비판하는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예술원 개혁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나섰다.

이기호는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 7·8월호에 실린 단편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도래할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방안(문학 분과를 중심으로)’에서 대한민국예술원의 실태를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보고서 형식을 취한 이 소설은 대한민국예술원의 역사와 현황, 인식조사, 해외 사례, 목표와 방향 등을 제1장 서론에서부터 제6장 결론까지 장과 절로 깔끔하게 정리해 담았다.

이 보고서-소설은 예술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상기시키며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이를 통한 예술원의 위상 강화를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그를 위해 예술원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하고 외국 예술원과 비교하며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반공 문예 조직의 국가적 공적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자 권리 주장”이었다는 1954년 설립 당시의 성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현재 시점에서 이 글이 지적하는 예술원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예술원 문학 분과 회원 26명(2021년 6월 현재) 대부분이 대학교수 출신으로 연금 수령자들임에도 매달 180만원씩 정액 수당과 각종 회의 수당을 받는다는 것, 그럼에도 문학예술과 젊은 문인들을 위해 하는 일은 없다는 것, 신입회원을 스스로 뽑는다는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와 미국, 독일 예술원의 경우 따로 지급되는 정액 수당은 없으며 미국은 오히려 회원들이 연회비를 낸다고 한다. 세 나라 모두 예술원 회원 자신들보다는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데에 사업 방향이 맞춰져 있다. 보고서 작성자가 정액 수당 전액 반환과 연회비 납부, 신입회원 선출 방식 개선 등을 제안한 것은 이런 외국 사례를 참조한 것이다. “뭔가 다 젊은 놈들 위주로 간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도 너그럽게 봐주는 아량이 필요함. 그래야 그놈들도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따라함. 나중에 그놈들도 다 당함”이라며 우스개로 눙치는 대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진지하고 엄숙한 가운데 뼈를 때리는 비판을 담은 골계미가 돋보인다.

이 글 안에는 동료 문인 3명과 일반인 15명의 예술원에 대한 견해가 입말 그대로 들어 있기도 하다. 아동문학이나 희곡 분야 회원이 전무하다든가, 남성 회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지적도 있고, 일반 시민들 중에서는 예술원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응답도 여럿이다. “다른 분야는 소득 하위 70%에 지원하는 것을 문학은 상위 1%에만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꼴”이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침묵과 귀찮음 사이에서 예술원이라는 제도가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자리 잡은 거”라는 반성도 곁들여진다.

소설가 이기호가 자신의 단편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해 소개한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소설가 이기호가 자신의 단편소설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해 소개한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이 소설은 보고서 형식이라는 파격적인 실험 속에 예술원 제도가 지닌 문제점을 날카롭게 부각시켰다. “이 제언을 단편소설로 발표한 이유는 쓰는 내내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임”이라는 문장은 작가 자신의 육성으로 새겨들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기호는 소설을 발표한 뒤인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예술원 회원을 보면서 느낀 부끄러움”을 언급하며 예술원 개혁을 위한 국민청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글에서 그는 “예술가에 대한 예우나 우대는 누군가에게 요구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갑게, 우리 내부의 모순을 바라보면서 행동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기호의 이 페이스북 글에 이시영 시인을 비롯한 문인 다수가 ‘좋아요’를 누르며 호응했다. 이시영 시인은 평소 예술원 제도와 현실에 부정적인 대표적인 문단 인사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그야말로 ‘아무나’ 예술원 회원이 된다”며 “그러니 박두진, 박경리, 최인훈 같은 작고 문인은 물론, 누가 보더라도 예술적 업적이 뛰어난 대다수 분이 아예 거기를 얼씬거리지도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 글을 본 때문인지 못 본 때문인지, 이시영 시인 자신에게도 예술원에 입회원서를 내라는 제안이 왔던 모양이다. “거기 들어가면 나로서는 상당한 ‘수당’이 보전되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고 당장 거절해버렸다”고 그는 올 초에 쓴 페이스북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기호 작가가 신호탄을 쏜 예술원 개혁 목소리가 어떤 반향을 얻게 될지 주목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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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2021년 7·8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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