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 하퍼 미 오클라호마대 교수
인간과 자연의 관계 주목한 연구
기후가 로마제국의 가장 큰 변수
요동치는 기후, 세차례 팬데믹까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주목한 연구
기후가 로마제국의 가장 큰 변수
요동치는 기후, 세차례 팬데믹까지

카일 하퍼 지음, 부희령 옮김/더봄·2만5000원 운명이란 인간 세상에서 인과율의 원칙에 따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일을 말한다. <로마의 운명>(원제는 The Fate of Rome)은 단어가 가진 묵직한 무게에 값한다. 로마는 그리스와 함께 서양 문명의 원천이자 자부심이어서 지성인이라면 넘어야 할 산과 같다. 에드워드 기번은 방대한 <로마제국 쇠망사>를 기술함으로써 역사학자로서 로마라는 산을 넘어 스스로 산이 되었다. 지은이 카일 하퍼는 운명이라는 지팡이를 들고 로마와 기번의 산을 넘고자 한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운명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측면보다는 인과율, 즉 원인과 결과에 내재하는 자연법칙에 무게 중심이 있다. 그 점은 “로마의 쇠퇴는 무절제했던 위대함이 맞닥뜨리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기번이 서 있는 자리와 흡사하다. 하지만 문명과 야만, 황제와 원로원, 전쟁과 평화 등의 줄다리기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어쩌면 자연은 중요한 배경이되 막연한 탓에 간과해온 영역인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영리하게도 범주를 최소화했는데, 기후와 질병이 그것이다.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다. 이 책은 기후로써 로마사 시대구분을 한다. 기후 최적기(기원전 200~서기 150), 후기 로마 과도기(서기 150~450), 고대 후기 소빙하기(서기 450~700)가 그것이다. 지은이는 기후 변화가 외부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며 다른 규칙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역사의 ‘와일드카드’라고 본다. 특히나 로마제국이 지중해 기후대에서 몬순기후, 열대림 변두리까지 뻗어나가 지구상의 서로 다른 지역을 연결한 점에서 기후는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 지은이는 고비마다 ‘북대서양 진동’을 언급하는데,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지중해 서쪽의 ‘아조레스 고기압’과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아이슬란드 저기압’ 사이의 기압차 변동을 말한다. 기압차가 확연하면 지중해 서쪽에 비정상적인 가뭄이 발생하고, 완만하면 잔잔한 비를 뿌린다는 것이다. 기후가 요동치면 환경 변화가 촉발되어 질병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신전, 공중목욕탕, 상하수도, 원형경기장 등 로마의 인프라가 폼은 나지만 공중보건은 낙제점. 화장실은 긴 벤치에 검은 구멍을 나란히 뚫은 형태로 뚜껑도 없었다. 하수도는 폐기물 처리 시스템이 아니라 폭풍우 때 빗물을 흘려보내는 지하 배수로였다. 가정용 화장실은 하수도와 연결되지 않아 주택가는 악취가 진동했다. 미생물이 번성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도시 밖에서는 숲을 베어내고 강줄기를 바꾸고 늪으로 도로를 내면서 자연 속 숙주에서 잠자는 미생물을 깨워 도시로 불러들였다. 로마에서 미생물은 유전자 돌연변이의 실험을 했다. 지은이는 후기 로마사를 세 개의 팬데믹으로 구분한다. 서기 165년에 시작된 안토니누스 페스트(천연두), 249년부터 262년까지 로마를 휩쓴 키프리아누스 페스트(에볼라 바이러스), 541~543년에 발생하여 749년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제국을 할퀸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흑사병) 등이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 중인 쥘엘리 들로네(1828~1891)의 1869년 작 <로마의 흑사병>(Peste à Rome). 죽음의 천사가 전염병이 창궐한 로마의 한 집 문을 두드리고 있다. 카일 하퍼 미국 오클라호마대 교수는 기후와 질병 등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의 쇠퇴를 추적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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