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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할머니에 대한 존중과 친절 담아 ‘피 여사’라고 부르죠”

등록 2021-08-08 18:05수정 2021-08-09 02:35

[짬] 인문 저술가 이인씨

손주 이인씨와 피 여사가 지난 6일 자택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손주 이인씨와 피 여사가 지난 6일 자택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이인(38) 작가가 최근 낸 <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한겨레출판)는 ‘마흔 백수 손자의 97살 할머니 관찰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렸다. 2010년부터 인문학 대중서를 15권이나 쓴 작가가 지난 2년, 만 96살 외조모(피영숙)를 집에서 간병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가 ‘피 여사’라고 부르는 할머니는 9년 전 다리를 다쳐 보행기에 의존하다, 허리 수술을 한 재작년부터는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홀로 설 수도 걸을 수도 없어 움직일 때는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난 2년 작가는 피 여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존재였단다. 피 여사가 신체의 고통을 완화하거나 일상의 필요에 따라 몸을 움직이려면 집의 유일한 남자인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군을 제대한 2008년부터 방에 틀어박혀 인문학 공부와 저술·강의를 해온 작가는 코로나로 강의가 어려웠던 지난해 피 여사와의 대화에 몰두했다. 피 여사의 지난 삶을 묻고 또 물었고, 지난 10여 년 피 여사의 몸과 마음에 나타난 변화를 읽어내려고 애썼다. 그 기록물이 이번 책이다.

지난 6일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저자와 피 여사를 만났다. “코로나 뒤로 피 여사 기력이나 총기가 더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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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표지.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위염 수술을 받을 때만 해도 병원도 피 여사를 포기하는 것 같았어요. 너무 고통스러워하셨거든요. 저도 피 여사가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피 여사의 삶과 간병 체험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지금은 잠도 잘 주무시고 표정이나 삶의 태도도 좋아졌어요.” 손주의 말 걸기가 할머니 건강에 좋게 작용했을 것 같다고 하자 작가는 “제가 옆에서 피 여사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준 게 건강에 작게나마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답했다. 손주의 캐묻기가 어땠느냐고 묻자 피 여사는 “묻고 물어 성가셨지. 그래도 그저 대답했지. 기분 나쁠 것도 없지 뭐”라고 답했다.

작가는 10여 년 전부터 ‘동거하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피 여사와 박 여사로 부른다. 이 호칭이 “두 분을 헤아리는 말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대학 때 여성학 공부를 한 게 자극이 됐죠. 가족은 편해서 쉽게 상처를 줄 수 있어요. 하지만 가족도 타인이잖아요. 한 인간으로서 존중감을 가지고 대하자는 생각에 그렇게 불렀죠.”

피 여사는 교사인 딸을 도와 손자가 돌 무렵부터 중학생 때까지 돌봤다. 20여 년 전에 별세한 사위와 틀어져 몇 년 독립해 살다 2004년부터 다시 딸네 집에서 살고 있다. 변호사인 막내 손자는 2년 전 결혼해 따로 산다.

손자의 간병은 아침 6시쯤 일어나 피 여사가 침대 밖에 내놓은 기저귀를 치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뒤 피 여사를 휠체어에 옮겨 화장실로 향한다. 피 여사가 화장실에 있는 보행기 도움으로 스스로 용변을 해결하고 양치하는 동안 그는 어머니가 만든 죽으로 피 여사 아침을 차린다. 식사 뒤에는 티브이 프로그램 <인간극장>이나 <아침마당>을 틀어놓고 피 여사 몸에 ‘저주파 치료 기구’를 붙인다. “피 여사가 저주파 치료를 받는 약 1시간과 또 티브이를 보며 한국 올림픽팀을 응원하는 시간에 제 일을 해요. 간병하며 저의 시간을 최대한 소중히 씁니다.”

요즘 피 여사는 유튜브 시청도 즐긴다. “할머니가 노인이나 격투기, 앵무새 영상을 좋아해요. 피 여사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는 것 같아요.”

3부로 된 책의 2부는 피 여사의 생애다.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또 속아서 원치 않은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 가정을 꾸린 뒤에는 남편의 폭력과 도박벽에 고통받았던 인생사가 담겼다. “피 여사가 재혼한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사회주의자였던 첫 남편이 해방 뒤 돈을 벌려고 아편 장사를 했고 6·25 때 인민군에게 학살당했다고 해요. 열 살 위 두 번째 남편은 전쟁통에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찾아간 게 마음이 없는 결혼으로 이어졌다고 해요.”

원치 않은 결혼은 자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피 여사가 둔 네 아들 중 둘은 이미 작고했고 다른 두 아들도 삶이 순탄하지 않았다. 피 여사는 지금도 티브이에서 한일전 경기를 보면 ‘비공식 한국 응원단장’이 된단다. “위안부로 끌려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원치 않은 결혼을 한 것에 대한 고통의 기억들이 아직도 선명한 탓”이다.

병환·노환으로 거동 어려운
96살 조모 2년 간병기 책으로
원치 않은 결혼 두번 등 생애도
“할머니 지난 고통 알며 치유받아”

군 장교 시절 ‘인간 문제’ 관심
2010년 이후 인문 대중서 15권

그는 책에 피 여사가 살아온 삶을 알면서 자신에게도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힘이 생겼다고 썼다. “그간 나만 보고 살아왔는데 제 옆에 있는 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의 삶을 돌아보게 됐죠. 제 고통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긴 거죠.” “가족에 대한 생각이 온전해졌다”는 말도 했다. “전에는 아버지와의 불화 등 어릴 때 제 경험에 근거해 가족이나 그 관계를 부정적으로만 봤어요. 나는 절대 평안한 가정을 꾸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번에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고 힘든 일을 견디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는 걸 새삼 배웠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전에는 불가였다면 이제는 선택이 됐죠.”

피 여사가 이번 책을 읽었냐고 묻자 손주는 “아마 다섯 쪽 정도 읽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바로 피 여사가 “절반은 읽었어”라고 정정했다. 글을 읽은 소감을 묻자 피 여사는 “내가 겪은 거 나오니 봤지. 내 이야기 글로 썼으니 좋지 뭐. 손주니까 그렇게 해줬겠지”라고 답했다.

어린 시절 이인 작가와 피 여사. 이인 작가 제공
어린 시절 이인 작가와 피 여사. 이인 작가 제공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작가가 인문학 저술가의 길을 걸은 데는 군대 영향이 컸단다. “학군 장교로 복무할 때 전국에서 온 여러 유형의 친구들을 만났어요.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 군에 와선 안 될 친구도 있었죠. 그때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요. 마침 동료 장교가 보던 <철학콘서트>(황광우 작) 책을 우연히 읽고 내용이 신선해 나도 이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2008년 제대 뒤 바로 컴퓨터를 한 대 마련하고 필명 ‘꺄르르’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홍구 교수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의 인터뷰 글을 주로 실었던 이 블로그는 1년 새 천만 명 이상이 찾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첫 책 <청춘 대학>(2010)을 출간하고 매년 꾸준히 1~2권씩 책을 냈고, 학습 공동체 ‘다중지성의 정원’과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프랑스 철학과 사랑, 성을 주제로 강의도 해왔다. “제가 고집이 있는 편이에요. 대학도 나왔고 군 의무 복무도 했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죠. 1년 인터뷰하고 골방에 박혀 공부만 했어요. 앞으로 평생 쓸 책 주제도 다 정했어요. 폭력, 종교, 행복, 나, 우리 안의 노예근성 등 15가지를 일단 잡았죠. 이 주제들로 각각 폴더를 만들어 지난 10년 동안 계속 자료를 모았어요. 벌이는 적지만 옷도 안 사고 여행도 안 하니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출퇴근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고 책 쓰는 손주가 어떻냐고 하자 피 여사는 이렇게 답했다. “좋죠. 손주 하는 일은 다 좋다고 생각해요.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밖에 못 다녔어요. 배우지 못한 게 한이에요. 공부하고 발전하는 게 좋아요. 지금은 여자들도 자유롭게 일해서 좋아요.”

작가는 피 여사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와 같이 사니 둘도 없는 손주지.”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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