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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거리] 김수영을 읽으며

등록 2021-08-13 04:59수정 2021-08-13 09:12

[한겨레Book] 책거리

김수영. <한겨레> 자료사진
김수영. <한겨레> 자료사진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팔천구백 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이십팔 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정신으로 위정자가 다 잘해줄 줄만 알고 있다. 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이재용 가석방 결정을 보면서 김수영을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설마설마했지만 결국 올 것이 온 것이겠죠. 불쌍한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수영이 피 토하듯 절규하듯 힐난하듯 적어 내려간 ‘육법전서와 혁명’을 행과 열을 뭉개고 시구를 생략해가면서 마음대로 읽어보았습니다.

혁명까지 바라지 않아도, 천국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건만, 이번만은 다르겠거니 여겨온 것은 거대한 착각이었습니다. 가석방은 기성 육법전서에 바탕하였으니 불법은 아닙니다. 다만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으니 울분이 치미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을 그놈들을 풀어달라는, 불쌍한 백성들이, 그대들이 70%를 넘나든다는 여론조사가 기성 육법전서와 뭉쳤으니,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는 외침이 어찌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혁명이란 말은, 차라리 옆으로 걷어치워 둬야겠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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