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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역사학자가 주목한 애거사 ‘그 밖의 것들’

등록 2021-08-20 05:00수정 2021-08-20 10:17

집, 독약, 섹슈얼리티, 계급…
그물코 열쇳말로 들여다 본
B급 추리작가와 20세기 영국
코로나 블랙 버텨 나온 시대물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부족한 병력 충원을 위해 여성도 전쟁에 동원했다. 영국왕립해군부대 여성지부 등 여성부대를 만들어 전투에 배치하는 한편 후방에서는 군수공장에 배치돼 남성이 맡았던 일을 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부족한 병력 충원을 위해 여성도 전쟁에 동원했다. 영국왕립해군부대 여성지부 등 여성부대를 만들어 전투에 배치하는 한편 후방에서는 군수공장에 배치돼 남성이 맡았던 일을 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l 휴머니스트 l 1만7000원

280쪽 손 안의 책이다. 차례, 사진, 참고문헌, 기타 쪽을 빼면 185쪽 본문. 줄잡아 200자 원고지 650매 분량이다. 근데 원자료 64권에 인용한 2차자료가 97건이다. 집필 석 달 만에 손 털었단다. 설마? 미리 메모해둔 게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는 어려서 빨간 표지 해문판을 독파한 지은이가 세상물정을 박람한 뒤에 다시 읽은 비(B)급 추리작가와 그 작품 이야기다. ‘아가사 크리스티’와 ‘애거서 크리스티’. 표기법 차이 이상의 다른 감흥이 있을까?

코로나 블루가 블랙 단계로 접어들어 ‘알 수 없는 분노로 마음이 죽어가고 있을 때’ 집필했단다. 살자는 몸부림이었을 테다. 코로나 시대물이다. 지은이는 영국사 전공의 사학교수. <그랜드 투어> <인삼의 세계사> <소비의 역사> <지도 만드는 사람> <온천의 문화사> <관상학, 그 긴 그림자> 등을 쓴 바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생존투쟁+미시사+덕질’ 복합판이다.

역사학자의 애거사 크리스티 읽기는 뭐가 다를까? 문학 전공자라면(애초 별 관심 없을 테지만) 애거사의 추리소설계에서의 위상, 스토리 전개방식의 특징, 등장인물의 전형성 따위에 주목할 거다. 지은이 관심은 그 따위가 아니라 그 밖의 것들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 등장인물과 스토리는 가상이지만 배경은 반드시 실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학자가 ‘그 밖의 것들’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영국 애거사재단이 공식인정한 작품만도 장편 66편, 중단편 150편에 이르는 양이니 그 문자총 안에는 묻힌 사실(史實)이 얼마나 풍성하겠는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가 1, 2차 세계대전을 몸소 체험하고, 두 번 결혼하였으며, 집을 사고팔아 재미 봤던 ‘복부인’이고, 뽈뽈빨빨 자동차, 기차여행을 즐겼으니…. 견문을 녹여 기술한 방대한 텍스트는 곧 박제된 20세기 영국일 터이다. 남들이 비급이라고 도외시한 곳에서 에이(A)급 사실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쁨.

지은이는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는 것과 흡사한 과정을 밟아 ‘애거사 크리스티와 그의 시대’를 조명한다. 새로 밝힌다기보다는 초점을 맞춘다는 편이 옳겠다. 나처럼 무엇이나 어설픈 독자에겐 그게 그거고, 모두 다 새롭다. 발굴지 지표에 친 그물의 코와 흡사한 키워드는 집, 독약, 섹슈얼리티, 병역면제, 돈, 계급, 영국성, 제국 등 16개다.

영업 비밀을 폭로한 마당에 스포일러인 셈 치자. 애거사 크리스티는 여성해방주의자인 듯 여성혐오적이고, 반자본주의인 듯 돈 좋아하고, 사해동포주의자인 듯 영국 우월주의자 모습을 보인다. 그의 시대는 20세기 양차대전 사이와 전쟁의 배후지 모습으로, 혹은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 정서로 나타난다.

예컨대 <파도를 타고>(1948). 롤리 클로드는 건장한데 집을 지키고, 약혼녀 린 마치몬드가 해외 파병된다. 당시 영국 병역법. 애 딸린 홀아비와 의사, 기관사, 농부 등 보호직업군 종사자는 징집면제였다. 대신 20~30살 미혼, 애 없는 독신 등 여성 750만이 징집됐다. 병역미필 남성은 콤플렉스에, 예비역 여성은 갑갑증에 시달렸다. 1918년에 여성, 그나마 30살 이상한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그 보상이었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부족한 병력 충원을 위해 여성도 전쟁에 동원했다. 영국왕립해군부대 여성지부 등 여성부대를 만들어 전투에 배치하는 한편 후방에서는 군수공장에 배치돼 남성이 맡았던 일을 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부족한 병력 충원을 위해 여성도 전쟁에 동원했다. 영국왕립해군부대 여성지부 등 여성부대를 만들어 전투에 배치하는 한편 후방에서는 군수공장에 배치돼 남성이 맡았던 일을 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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