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l 엘릭시르(2021)
추리소설 애독자들은 대체로 반전을 원한다. 이 점은 늘 역설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누구보다 “회색 뇌세포”를 쓰며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작가가 자신들을 제대로 속여주기를 열렬히 바란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강력한 반전이 주는 쾌감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긴 추리소설의 역사 동안 온갖 반전이 다 등장했기에 작가들이 독자들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소설 구조의 개연성을 지키면서도, 예측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사건을 만들려면 작가들이야말로 회색 뇌세포를 맹렬히 돌려야만 한다. 독자가 완전히 속아버렸다는 만족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낸 소설이다. 매 장을 넘길 때마다 사건의 흐름이 계속 전환되어 읽는 이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결말에는 추리소설의 문법에 익숙한 독자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도입부에선 도덕적 혐오감을 한편에 제쳐두어야 몰입할 수 있다. 발단은 진파군 은파면의 은파고등학교 2학년 3반 담임교사인 마흔다섯 살의 김준후가 자신의 제자 채다현의 시체를 동네 호수에 던지는 사건이다. 다현을 대하는 준후는 교사이자 성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법을 위반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어느 날 밤, 준후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다현은 그를 찾아오고, 그 직후 다현은 교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준후는 자신의 흔적이 남았을 다현의 시체를 처리한 후에야 처음에 했어야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트릭이 총집합했지만 소설은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전형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동기와 등장인물이긴 해도, 현실감 있는 수사 묘사와 연이어 터지는 사건으로 독자는 한 가지 의혹에 오래 머무를 틈이 없다. 범죄 방식도 다양하고 관련 인물의 동기도 각각 깊이가 있다. 마지막 결말은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나 아키요시 리카코의 <성모> 같은 놀라움을 안기고, 제목인 ‘홍학의 자리’가 가리키는 바를 깨달으면 애잔한 감상이 남는다. 요약하면, 추리소설에서 반전을 우선으로 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재미있게 읽을 책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언덕이 있다. 요새 남에게 추천할 추리소설을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범죄를 다루는 문학의 독자들은 이 장르에는 도덕적으로 완결한 인물만이 등장하지 않고, 인간 심리의 넓은 스펙트럼을 탐구하기 위해 어두운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는 데에 합의한다. 하지만 <홍학의 자리>에서 계속 터지는 반전을 즐기다 보면 어떤 슬픔이 남기도 한다. 미성년자인 학생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시체를 유기한 범죄자가 서사의 중심에 놓였기 때문이 아니고, 그에게 걸맞은 처벌을 원하는 정의감 때문만도 아니다. 문학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생생히 그리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그 고통에 공감하고 피해자를 이해하려 한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피해자,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작가가 주는 답을 따지기보다, 독자들이 이 질문을 함께 생각해주었으면 싶다.
♣H6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