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학3
식사예절의 기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임봉길 옮김 | 한길사 | 4만2000원
2009년에 101세로 세상을 떠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남긴 수많은 저작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후학의 한 사람으로서, 비록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는 하나 그의 전 생애에 걸친 고민의 지점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과정에 동참해보자. 그의 대표작 <신화학> 시리즈(전체 4권) 3권이, 2권 출간 뒤로 14년 만에 번역 출간됐다.
프랑스 출신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역사성을 적극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지나친 비교·대조·이분법적 논리의 작위성 등으로 비판받았지만, 그는 친족구조, 원시인의 심성, 신화분석 등에서 구조주의적 방법을 유용한 설명도구로 일관되게 활용했다. 인류학이 지나치게 사변적, 유추적, 귀납적 방법으로 개별적인 특수성에 집착했다고 보고, 이론적 보편성, 과학적 체계성, 논리적 인과성 등을 강조하는 연역적 논리방식을 적극 활용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는 다양한 변이의 한 요소였을 뿐이지 결코 무시된 적은 없다.
그는 어떤 사회나 모두 기본적으로 인본적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보편적 사고체계가 자연현상이나 천체구조, 동식물 행태 등의 물리적 세계의 운영원리와 상통한다고 보았고, 그것을 신화를 통해서 이해하고자 한 것이 <신화학> 시리즈의 기본 골조이다. <신화학3>에서 소개되는 신화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화소(神話素)들은 오줌, 똥, 정액, 월경혈, 출산 등 지극히 원초적인 본능행위들과 관계를 가진다. 이것이 결혼, 성행위, 전쟁, 사냥, 요리 등의 문화적 행위와 연결되고, 이어서 부족, 지역, 원시/문명사회, 고대/현대사회 등의 각각의 문화적 맥락과 규범들과 교차하면서 의미가 생성된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레비스트로스는 동서고금을 망라한 신화 사례들을 속사포처럼 던진다. 머리가 얼얼해지도록….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날것과 익힌 것의 대비는 배설과 영양섭취와 교차되면서 오줌, 수액, 대변, 술 등으로 엮어진다. 이러한 교차와 대조 방식은 문화의 숨겨진 구조를 밝혀내는 열쇠와 같은 것이다. 해와 달, 남성과 여성, 새와 별, 식물과 물고기 등은 신화 속에서 하늘의 별자리와 관계를 가지며, 이 관계 속에 등장하는 신화소들은 남자한테 달라붙는 몸이 절단된 여인(꺾쇠 여인), 개구리, 곰, 난봉꾼, 늙은 두꺼비 여인, 고슴도치, 카누 등이다. 이 요소들이 자연과 문화, 본능과 규범을 연결시켜준다. 달라붙은 여인 신화 스토리는 다양한 버전으로 소개되는데,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남자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절단된 여자를 떼어내려 하고, 억지로 떨어져 나온 여인은 갈기갈기 찢겨서 총포식물이 된다. 개구리 신화에서 등장하는 문화-자연, 음식-배설, 부엌-구토, 사냥-식인 등의 대립구도는 커다란 성기를 가진 남자와 꺾쇠 여인의 대립으로 표현된다.
미국 메인주 인디언 타운십의 파사마쿼디족의 모습(위)과 자작나무 껍질에 긁힌 파사마쿼디족 신화(아래)
모든 신화에 적용되는 대립구도는 3개의 층위로 구분된다. 즉 달라붙은 여자와 난봉꾼은 ‘경험’ 층위이고, 갈고리 총포식물(달라붙는 여자의 최후)과 뱀 같은 성기는 ‘상징’ 층위, 한 남자와 지렁이와의 결혼은 ‘상상’ 층위라는 것이다. 문두루쿠 신화에서 해와 달의 기원은 근친상간과 연결된다. 근친상간을 당한 여동생이 가해자의 얼굴에 숯 검댕을 묻히자 검은 얼룩이 생기고 그것은 달의 흑점으로 표현된다. 즉 달이라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근친상간의 신화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는 개구리 형상이 천체 흑점의 모양이라고도 한다.
신화는 ‘황당한 이야기’인 소설과도 연결된다. 신화의 가장 낮은 단계는 소설의 가장 초기 단계가 되면서 소설은 독창성과 신선함을 가지게 된다. 소설은 도덕적 질서에 근거한 ‘닫힌 구조’인 반면 신화는 자연적 질서에 근거하는 ‘열린 구조’로 이 두 가지는 서로 대체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설은 신화적 창조성에 의존한다. 즉 이 두 가지 작동 방식은 서로 반대 방향이지만,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신화에서는 항상 서로 대조적인 양극점이 대립하거나 갈등하는데, 이 두 가지를 연결시키고 매개시키는 요소가 존재한다. 하늘과 땅은 수직적이면서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삶과 죽음은 낮과 밤이 규칙적으로 교대되면서 수평적이면서 시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것을 ‘카누의 균형 원리’라 칭한다. 카누가 뒤집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앞에 타는 사람과 뒤에 타는 사람이 양 끝에서 자리를 지켜야 하며 각각의 자리에 앉을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음식 조리는 굽기(볼록기구/불/손님접대용/자연/남성)와 삶기(오목기구/물/가족용/문화/여성)로 이분되고, 이것은 다시 경제적 상하계층, 계급성과 서로 연결된다. 여기에 더해 그을린 것, 훈제한 것, 증기로 익힌 것까지 분석은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는 그의 취미가 요리였으리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구인들에게 음식을 소리 내어 먹는 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이지만, 오마하 인디언들에게는 음식 먹는 소리의 강약 규정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종교적인 이유나 수치심을 상대방에게 유발하고자 할 때 등이 그 예이다.
레비스트로스도 자신의 기술 방식이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점을 알고 신화소들 간의 관계를 도표와 관계도식을 통해 선명하게 설명하고자 했다. 신화 관계를 신화소들의 다양한 관계 양태로 설명하면서 신화들이 시공간을 초월하면서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경탄스러울 정도로 치밀하게 논증해낸다.
그의 모든 저작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점은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특별한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다양한 이질성 내부를 관통하는 인간 본연의 존엄성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가올 인류의 종말이 두렵다면, 우리 내부에 숨겨져 있는 부끄러움을 인식해야 한다고 책을 마무리한다. 뼈를 갈아넣는 업보인 듯 번역 작업에 몰두하셨을 역자의 노고에 마음이 숙연해지는 아침이다.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