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어린이에게 다정한 세상을 위해

등록 2021-08-27 05:00수정 2021-08-27 12:15

[한겨레Book]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참새의 빨간 양말
조지 셀던 글, 피터 리프먼 그림, 허미경 옮김 l 비룡소(2014)

어린이는 냉정한 독자다. 작가가 누구인지, 얼마나 유명한 책인지보다 ‘재미있는지’를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어린이는 관대한 독자다. 무엇이든 장점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기만 하면 그 책에 대해 좋게 말한다. 강아지가 많이 나와서, 한 장면이 너무 우스워서, 주인공 이름이 자기랑 같아서 ‘재미있는 책 ’이라고 한다. 설정에 무리가 있다고, 전개가 어색하다고 내가 한마디 하면 어린이는 “선생님 , 이건 그냥 이야기잖아요” 하고 그림책 편을 든다. 전에는 어린이가 독서 경험이 적어서 잘 판단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림책 속 세계가 어린이에게 우호적이기 때문에 어린이도 마음 놓고 ‘좋은 점 ’을 찾는 것은 아닐까? 호의에 호의로 답하는 셈이다.

<참새의 빨간 양말 >은 어린이가 마음껏 좋아할 만한 그림책이다. 앙거스네 가족은 양말 공장과 조그만 양말 가게를 운영한다. 어린 앙거스를 포함해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하지만, 큰길에 백화점이 생긴 뒤로 손님이 뚝 끊겼다. 어느 날 앙거스는 발이 시려서 동동거리는 참새 브루스에게 양말을 만들어주기로 한다. “너한테 양말 한 켤레 만들어주는 데 털실이 그렇게 많이 들지는 않을 거야.” 문제는 브루스가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앙거스는 추위에 떠는 참새들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모두에게 양말을 만들어준다. 그러느라 얼마 남지 않았던 공장의 털실을 다 써버렸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다.

분명히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면서도 처음에 나는 조금 가슴을 졸이며 읽었다. 앙거스가 철없는 일을 했다고 어른들에게 야단맞으면 어떡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 다행히 앙거스의 아빠는 사실을 알고도 그저 한숨을 쉴 뿐 아이를 탓하지 않는다. 그 점이 앙거스에게 큰 보상이 주어지는 결말만큼이나 마음에 든다 . 아마 내가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보다 양말 기계에 더 관심을 보인다 . 얼핏 정교한 듯 보이지만 잘 보면 말도 안 되는 기계라는 점이 재미있다. 온갖 디자인의 빨간 양말, 특히 참새들이 신은 “빨간 줄무늬에 앞코도 빨간 겨울 양말”은 볼수록 사랑스럽다 . 참새들의 양말을 만드는 앙거스의 난감한 표정, 날개와 부리로 양말을 벗느라 애를 쓰는 참새들의 모습 등 숨은 유머가 많다. 몇 번이고 책을 다시 펼쳤다. 그림책은 정말 다정한 세계다.

그림책 바깥의 세상도 어린이에게 호의적이면 좋겠다. 어린이가 세상의 장점을 먼저 보고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최소한 어린이가 공공장소에서 환영받고,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를 향한 무신경한 태도와 날 선 말들을 당사자인 어린이가 가장 예민하게 보고 듣는다. 어린이가 너무 냉정해지지 않도록, 더 큰 몸짓과 목소리로 어린이 편을 들고 싶다. 그것이 그림책을 읽는 어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서교육 전문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