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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향유고래와 헤엄치기

등록 2021-09-10 04:59수정 2021-09-10 09:45

[한겨레Book]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지구 가장 깊은 곳에서 만난 미지의 세계
제임스 네스터 지음, 김학영 옮김 l 글항아리(2019)

내게는 오래된 꿈 하나가 있다. 바닷속에 들어가서 고래를 만나는 것이다. 고래는 내가 지상에서의 삶을 사랑하게 만든 생명체다. 기왕 만나려면 화끈하게 프리다이빙이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바다에 얼마나 깊게 들어가야 할까? 숨은 얼마나 참아야 할까? 그 꿈 때문에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를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저자 제임스 네스터도 향유고래(심해 잠수 동물 중 가장 깊게 잠수하는 동물인)와 헤엄치기 위해서 프리다이버 연습에 매달렸다. 책을 읽자마자 내 꿈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너무 무서웠다. 심해 40피트까지 내려가 고래가 지나갈 때까지 숨을 참는 사람은 ‘인생을 바꿀 만한 순간’을 만나거나 ‘인생이 끝장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신비로운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일본 해녀가 바다 속에서 물안경을 끼지 않는 이유는 물안경을 쓰면 앞이 너무 잘 보여서 바다에 사는 다른 생물들에 비해 부당이점을 얻기 때문이다. 칼 스탠리라는 사람은 열네살 때 ‘권위 저항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이름은 최고로 끝내준다) 정신병원에 6주간 입원했다가 나온 뒤에 혼자서 수제 잠수함을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제임스가 칼이 만든 삐거덕거리는 무보험 수제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으로 내려가면서 묘사하는 풍경은 꿈같다. 중층해에 내려가면 물고기들은 수평으로 헤엄치지 않고 수면을 향해서 수직으로 헤엄친다. 잠수함 조명등에 비친 물고기들은 은색 마침표 같다.

“물속 세상은 단조롭기 그지없고 당황스러울 만큼 변함이 없다. 산이나 하늘도 없고, 좌우 위아래를 구별하게 해줄 랜드마크도 없다. 밤이 가고 아침이 밝는 일 따위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계절도 없다. 기온은 언제나 똑같다. 이곳에 거주하는 동물들에게는 집이란 게 없다. 돌아갈 고향도 없고 찾아갈 목적지도 없다. 끊임없이 떠돌 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지금껏 내가 본 곳 중에 가장 어둡고 가장 고독한 이곳에서 한없이 심오한 존재론적 비애를 느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도 몹시 외로워졌다. 결국 제임스는 향유고래와 잠수에 성공했을까? 성공했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남는 또 다른 장면도 있다. 보트 위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고래가 나타나지 않을 때 그냥 다이빙이나 하자고 제임스 일행이 숨 한번 크게 마신 다음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이 있다. 바닷속으로 들어간 그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누구는 낮잠이라도 자는 듯이 머리 뒤로 손을 깍지 낀 채 부력이 사라지는 지점 언저리를 지나고 누구는 그 옆에서 몸을 쫙 뻗고서 느긋하게 헤엄치고 그 두 사람 아래쪽으로 건물 7층 깊이쯤 되는 곳에서는 또 다른 두 사람이 이중으로 나선을 그리면서 헤엄쳐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가다가 모두 검푸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문득 생각했다. 한번씩 숨을 꾹 참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이 순간이 참 좋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나도 궁금하다.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분명한 것은 만약 우리 인류가 생명 전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이 열릴 것이고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도 달라질 것이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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