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에서
에드워드 김 지음. 바람구두 펴냄. 1만9800원
에드워드 김 지음. 바람구두 펴냄. 1만9800원
잠깐독서
지게를 지고 ‘몸뻬’ 바지를 입은 아낙과 맨발의 여자아이가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다. 그들이 사는 듯한 초가집이 뒤로 보이고 집 옆으로는 개울물이 지나는데, 개울이 가서 닿는 곳은 멀리 수평으로 흐르는 한강이다. 날이 흐려서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바람도 세게 부는지 개울가 미루나무가 한쪽으로 쏠린 모습이다. 1955년 여름, 지금의 서울 삼성동 코엑스 빌딩 앞 영동대교로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사진작가 에드워드 김(한국명 김희중·66·상명대 사진학과 석좌교수)씨가 낸 책 <그때 그곳에서>(바람구두)의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사진이다. 경기고 1학년 시절 한 사진 단체 주최 촬영대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작품. <그때 그곳에서>는 김씨가 찍은 사진 65장에 짧은 덧글을 달아 낸 책이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반세기 전 서울 모습들에서부터 90년대 초까지의 국토 이곳저곳이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되었다. 이웃마을 환갑잔치에 가느라 의관을 정제하고 포플러 우거진 신작로를 걷는 십여 명의 촌로들, 서빙고에 저장했다가 한여름에 사용하기 위해 한강의 얼음을 톱으로 썰어 채취하는 모습,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된 장남의 묘비 앞에 엎드린 어머니 등. 그러나 책의 핵심은 역시 1973년 가을 북한의 모습을 담은 열 장의 컬러사진과 그에 곁들여진 취재기다. 미국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일하던 에드워드 김은 서방 기자로는 처음으로 북한 취재길에 올라 3주간 평양과 원산, 금강산 등을 취재했다. 당시만 해도 오히려 남한보다 우월한 것으로 자부했던 북한의 경제 상황은 카메라에 잡힌 주민들의 여유있는 표정에 고스란히 묻어 난다. 하나뿐인 형을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잃은 지은이가 북한의 현실과 주민들의 생활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전달하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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