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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카사노바의 엇갈린 사랑

등록 2006-02-09 20:25수정 2006-02-12 15:58

박청호의 소설집 <사랑의 수사학>
박청호의 소설집 <사랑의 수사학>
박청호의 소설집 <사랑의 수사학>

“나는 사랑하는 동안은 오직 그 대상에게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한곳에 매여 있지 않고 뭔가를 찾아 헤맸다.”

박청호(39)씨의 소설 <사랑의 수사학>(작가정신)은 매달리는 여자와 뿌리치는 남자 사이의 엇갈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짝사랑은 아니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남자 역시 여자를 사랑한다. 그런데도 두 사랑은 행복하게 만나지지 않고 어긋나며 균열을 일으킨다. 사랑의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책의 부제는 ‘카사노바와 사랑의 행위에 관한 해석’이라 되어 있다. 남자는 그러니까 카사노바 형 인간이다. 카사노바를 실없는 바람둥이 정도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카사노바는 매번 자기 나름의 진심을 담아 사랑에 임한다. ‘카사노바의 진실’이란 거짓도 농담도 아니다.

그가 보기에 문제는 여자 쪽에 있다. “히스테리 환자이며 의심하는 주체”인 여자 말이다. 여기서 카사노바 형 남자 대 히스테리 형 여자 사이의, 사랑을 보는 관점을 둘러싼 싸움의 구도가 마련된다.

“나는 다른 여자들과 그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를 독점하고 싶었다. 나는 그의 전부를 원했다.(…) 나는 그가 선물인 양 내미는 그의 일부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그에게 전부이어야 한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것이 화자인 여자의 사랑관이다.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관점이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여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사노바가 아니라 로미오나 베르테르 같은 순정남이어야 했는데.

소설 <사랑의 수사학>은 ‘상상들’ ‘사건들’ ‘행위들’이라는 세 편의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졌다. 세 편을 통해서 시종 ‘나’와 ‘그’로만 지칭되는 여자와 남자의 엇갈리는 사랑의 양태가 그려지는데, 세 작품의 스타일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첫편인 ‘상상들’은 50쪽 남짓한 작품 거의 전체가 한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에서 카사노바 형 남자와 히스테리 형 여자 사이의 사랑 다툼은 화자인 주인공 여자의 냉정하며 분석적인 서술에 얹혀 전달된다. 롤랑 바르트의 에세이 <사랑의 단상>, 혹은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떠올릴 법도 하다. “그는 내 속의 타자를 만나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아이러니를 견딜 수 없었다. 그에겐 오직 자기 자신밖에는 없었다”라고 말할 때 화자인 여자의 분석의 칼날은 상대방 남자를 가혹하게 겨냥하지만, “그는 나 때문에 지쳤다. 나의 편집증이 그를 조각냈다”고, 같은 칼로써 자신을 겨눌 수 있을 정도로 여자의 분석력은 냉철하고 객관적이다.

‘상상들’의 여자가 ‘그’를 8월에 만나 한 달 간 사랑하다 헤어진 뒤, 이번에는 ‘사건들’의 여자가 10월에 그를 만나 사랑하다가 역시 헤어진다. ‘상상들’이 분석적이며 에세이적이라면 ‘사랑들’은 사건과 대화를 주로 삼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두 작품에서 모두 여자는 ‘나’로, 남자는 ‘그’로 지칭되는데, 여러 정황상 ‘그’가 같은 사람인 반면 여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서로 다른 여자들을 뭉뚱그린 것이 마지막 작품 ‘행위들’의 ‘나5c나’다. ‘나5c나’는 “모든 여자 그 자체”로 카사노바인 남자가 원하는 모든 여자, 혹은 여자의 모든 것을 지닌 존재이다. 이 ‘나5c나’는 “그가 여자에게서 구하는 모든 매력들, 그가 한 여자에게서 보는 그 여자보다 더한 그 무엇을 남김없이” 갖추고 제공함으로써 남자를 무릎 꿇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욕망이 끊임없이 대상을 바꾸는 환유(換喩)이면서 동시에 늘 제자리로 돌아오는 환유(還遊)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일종의 복수극이자 ‘권선징악식’ 해피엔딩인데, 두 가지 사랑법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충분히 밀고나가지 못한 아쉬움을 주는 대목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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