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가운데 검은 구멍)이 중성자별(밝은 청색 볼)을 삼키는 순간을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청색라인은 중력파, 오렌지색과 붉은색은 뜯겨나가는 중성자별의 부분. 지난 6월29일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이 순식간에 고밀도 중성자별을 삼키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윈번대학교 제공
우주는 계속되지 않는다
천체물리학자가 바라본 우주의 종말
케이티 맥 지음, 하인해 옮김 l 까치 l 1만6000원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하는 걱정을 일러 ‘기우’(杞憂, 괜한 걱정)라고 하는데, 천지붕추(天地崩墜) 즉 우주 종말론을 정색하고 책 한 권으로 정리한 이가 있다. 미국인 이론천체물리학자 케이티 맥이다.
그 역시 초짜 대학생 때 우주가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 기억이 생생하다. 핵물리학 실험실 화재, 중성미자 탐지기 폭발 등 고난 끝에 대학교수로, 저술가로 자리 잡았으니 젊을 적 바닥이 꺼질까 봐 걱정하던 일을 ‘미우’(米憂)라 하지는 못하겠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우주종말 시나리오는 다섯 가지다. 머나먼 미래의 일이거니와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니 어느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없고, 딱히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지식도 없으니 ‘한우’(韓憂)인 셈 치고 지은이를 따라가 보자.
빅 크런치. 은하끼리 충돌해 와장창 우지끈 뚝딱 붕괴한다는 설이다. 공을 공중으로 던지면 솟구치며 속도가 줄어 정지했다가 가속추락하여 원위치 하듯이 빅뱅 이후 팽창하던 우주가 감속, 정지를 거쳐 수축하게 된다는 것. 우리가 사는 은하와 이웃 은하가 충돌하고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중력 상호작용이 격렬해지며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될 것이다. 충돌하기 훨씬 전에 지구가 불덩어리가 될 테니 몸 으스러질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열 죽음과 빅 립. 모두 우주가 팽창을 계속한다는 가설에 의한 종말이다. 열 죽음은 엔트로피의 소멸이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빈 곳이 많아지면 에너지가 흩어지고, 에너지가 흩어지면 모든 물질들 역시 고요 속으로 흩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빅 립’은 쫙~ 찢어짐. 은하들이 흩어지고 항성과 행성들이 궤도 이탈하는데, 종내 팽창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다.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다시 원자핵으로 부서지면서 우주공간을 이루는 망이 찢어진다.
진공붕괴. 이 책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장이 건재한 상태를 힉스진공이라고 하는데, 양자 터널 효과나 양자 요동으로 장벽이 무너져 힉스진공이 붕괴하면 강력한 에너지 거품에 의해 모든 것이 타버린다고 한다. 다행한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그것도 몇 마이크로초 안에 발생한다는 사실. 뭔가 가장 있어 보이는 설이다.
바운스. 따끈따끈한 최신형 종말론이다. 2015년 중력파가 처음 탐지됐다. 워낙 약하기 때문에 오랜 노력이 들었던 것인데, 과학자들은 중력이 또 다른 우주로 새어나갔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우주들이 멀어지다가 마주치며 반동(바운스)을 일으켜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다음은 새로운 빅뱅이다. 평행이론과 흡사하고, 종말이자 재탄생인 점에서 불교의 윤회를 닮았다.
최소 수십억 년 뒤의 일이므로 내 간여할 바 아니나 또 다른 우주로 이주한 후손들이 있다면 그들의 눈에 파국은 불꽃놀이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지은이는 종말론 시나리오를 펼치기 위해 최신 천체물리, 양자물리 학설을 동원한다. 설명은 설명을 낳는데, 종말론을 미끼로 각종 최신 학설을 소개, 설명하는 듯한 느낌.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