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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학적이고도 비과학적인 과학하기

등록 2021-10-08 04:59수정 2021-10-08 13:41

[한겨레Book]
객관·합리의 이미지로 포장된 과학
오해와 편견 걷고 살펴보는 ‘과학하기’
실패·실수 딛고 일어서는 “성공 아닌 성장 이야기”

과학하는 마음

매일의 실패를 넘어 경이와 호기심의 세계로

전주홍 지음 l 바다출판사 l 1만4800원

과학은 자연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하여 얻은 경험적 지식 체계이다. 관찰과 연구 대상이 인간과 사회이면 사회과학이 된다. 과학은 철학과 대별되는 학문의 방법론을 이르기도 하는데, 대개 과학이라 하면 자연과학을 가리키고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구별된다. 철학은 대체로 추상적이거나 명확히 잡히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과학은 더욱 구체적이고 명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과학적’이라는 일상적 표현이 담고 있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과학은 객관·논리·합리를 지닌 완전무결한 것일까?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과학이 완전무결을 지향하더라도 ‘과학하기’의 과정은 숱한 실패와 실수의 연속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과학을 지향하는 과정이 과학자의 과학하기인 것이다.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분자생리학자 전주홍 교수는 <과학하는 마음>을 통해 시종일관 진중한 태도로 과학을 둘러싼 통념과 미신을 살펴본다. ‘과학하기’를 자세히 설명하고 묘사하여 과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음으로써, 과학자와 예비과학자에게는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대중에겐 과학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돕는다. 과학하기를 살펴 과학을 논하므로 과학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과학철학자가 아닌 현장 과학자가 이끈다는 점에서 더욱 생생하고 흥미롭다. 실험실이라는 현장에서 몸을 움직여 고민해온 과학자이기에, 과학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한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과정으로 과학하기의 속살을 살펴본다.

뛰어난 연구 결과를 내놓은 위대한 과학자는, 선행 연구를 면밀히 검토하고 기존 연구의 문제점을 기막히게 찾아내어 이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가설을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도출해내고 이에 따라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여 흐트러짐 없이 가설을 증명해낸다? 이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지은이는 단언한다. “생각보다 훨씬 어수선하고 임기응변이며 뒤죽박죽이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달라 고심하다 나중에 주요한 참고 문헌을 발견한 뒤 가설을 새로 다듬고, 가설이 명료하게 정리되기 전에 아이디어만으로 실험을 설계해 수행하기도 하며, 실험 결과를 해석하면서 뒤늦게 가설을 수정하고, 연구를 거의 마무리한 뒤 논문 쓰는 단계에서 가설이 정리되는 경우도 실험실 현장에서는 흔한 일이다.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피터 메더워가 1963년에 한 강연 제목이 ‘과학 논문은 사기일까?’였던 것을 지은이가 언급한 까닭이다. 결과물인 논문만 보면 “논리와 이성의 승리”이며 “우여곡절과 임기응변”은 철저히 제거된다.

가설 설정 과정이 특히 과학하기의 속살을 잘 보여준다. 법칙화할 수 없는 직관적인 상상력과 우연적·우발적 아이디어가 가설로 이어진다. “개성·우연·영감·직관·통찰과 같은 비과학적 요소”가 아이디어를 끌어낸다. “중요한 모든 것은 이를 발견하지 못한 누군가가 이미 봤던 것이다.”(앨프리드 화이트헤드) 또한 “발견은 누구나 보는 사실을 보는 것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얼베르트 센트죄르지) 발견에 이르는 생각은 과학적 감수성에서 비롯한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질소머스터드가 최초의 화학 항암제로 개발된 사례에서 과학적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알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피부를 손상시키고 물집을 일으키는 수포제로 개발된 황머스터드가 골수와 림프 조직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독가스 해독제를 개발하던 루이스 굿맨과 앨프리드 길먼이 머스터드가스(겨자가스)가 백혈병과 림프종 치료에 유용하다는 생각을 해낸다. 황머스터드보다 화학적으로 안정한 질소머스터드가 항암제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독성학과 종양학 지식의 비전형적 조합”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과학적 발견을 추동하는 창의성이란 이처럼 ‘연결’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과학은 예술·문학·철학과 통한다. 논문 쓰기에는 “단순한 글쓰기 능력”뿐 아니라 “예술적 감각이나 소양”도 필요하다. 연구 결과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통하는 데 유용하기에, 논문에 ‘그림 초록’이나 ‘비디오 초록’을 요구하는 경우가 최근 늘고 있다. 이미지를 통해 더 직관적으로 연구 결과를 이해시킬 수 있기에 “실제 실험실에서는 신뢰성과 설득력을 높이는 작업의 일환으로 더 좋은 혹은 예쁜 이미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은 은유이기도 하다. 아이디어 도출과 관찰, 이론 구성 등에서 은유적 표현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세포’(cell)는 원래 수도원의 작은 방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며, 에르빈 슈뢰딩거는 유전자를 ‘암호 대본’이라고 부름으로써, 분자유전학의 이론적 토대와 중요한 관점을 제공했다. 게다가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겪고 있는 당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자기 과잉과 성과 중심의 시대’에 끝까지 쥐고 가야 할 믿음으로 성공 아닌 ‘성장’을 거듭 강조한다. 결과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온갖 실패와 실수가 쌓이고 쌓여 과학을 구성하며, 이런 실패와 실수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과학하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생각하는 훈련”이며, 또한 독특하고 전문적이며 고통스러우면서도 희열에 가득 찬 삶의 방법인 셈이다. 이 책은 과학하기에 대한 중요하고도 생생한 성찰과 사유로 가득한 보기 드문 책이면서 동시에, 과학과 무관한 삶을 산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지속적인 사고의 공격을 견딜 수 있는 문제는 없다.”(볼테르) 그것이 과학의 문제이든, 사회나 인간의 문제이든 말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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