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숙 지음 l 삶창 l 1만4000원 “평생을 밭고랑 기어 댕겨서 손에 쥐어진 것이 뭣이겄냐. 이녁 새끼나 알아주는 훌륭한 골병에다 쳐다보기도 아깐 빚덩이밲에 더 있냐!” 정성숙(사진)의 소설집 <호미>에 실린 단편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힘든 농사일과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한 미애가 동네 친구인 ‘나’와 전화 통화에서 하는 말이다. 그 자신 전남 진도에서 32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정성숙 작가가 펴낸 첫 소설집 <호미>에는 미애와 같은 여성 농민들의 삶과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책에는 여덟 단편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표제작을 포함해 다섯 편이 여성 농민의 삶을 그린다. “크라는 파는 대고 오그라드는데 오살할 놈에 새비린 잎은 바람난 과부 년 넙턱지 퍼지대끼 한당께.” 표제작의 주인공인 영산댁은 산 너머 외딴 대파밭에서 혼자 호미로 풀을 뽑는 일을 한다. 막걸리 한 병으로 끼니를 대신하고, 아리랑 노래로 벗을 삼는다. “논두럭에 개구리는 배암 간장 녹이고 밭고랑에 지심은 내 간장을 녹이네에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아 났네에.” 막걸리에 취해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난 영산댁은 갑자기 몸 한쪽에 마비가 오고, 할 수 없이 호미로 땅을 박아 가며 힘겹게 산을 기어 내려간다. 어느덧 사방은 어둠에 잠기고, “퍼억! 스으으윽. 뱀이 풀숲을 지나는 소리보다 낮게 굼벵이의 빠른 걸음보다는 느리게” 산길을 내려가는 영산댁이 마침내 집에 도착하거나 도중에 사람과 마주쳐서 도움을 받게 될지 여부는 불확실한 채로 소설은 문득 끝이 난다.

정성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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