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 이름에 담긴 부와 권력, 정체성에 대하여
디어드라 마스크 지음, 연아람 옮김 l 민음사 l 1만8000원 주소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길을 찾았을까. 마을 입구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지나 노란 꽃밭이 있는 집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보이는 정자 뒤편 첫번째 골목 네번째 집이 우리집이라고 설명하지 않았을까. 원시시대에는 직접 가본 곳이 생활반경이었을 테니 굳이 지도나 주소가 필요하지 않았을 터. 외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보내다 문득 ‘국제우편 비용이 너무 싼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던 저자는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만국우편연합’을 찾게 되고 우연히 ‘전 세계에 주소 붙여주기’ 캠페인을 발견한다. 그 일을 계기로 미국뿐 아니라 유럽, 한국과 일본, 인도, 아이티,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전 세계를 찾아다니며 주소의 기원과 체계, 가치와 미래를 전망하는 <주소 이야기>를 펴냈다. 저자는 “도로명 주소는 권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어떻게 수 세기에 걸쳐 연장돼왔는지에 대해 장대한 서사를 품고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틴 루서 킹의 이름을 딴 거리 이야기, 고대 로마에서 길을 찾는 방법, 나치 유령이 떠도는 베를린 거리 이야기 등으로 흥미를 끈다. 책은 각 나라의 구획 방법, 정체성과 부에 연결된 도로명 등을 소개한다. 주소 변경 신청권을 판매하는 뉴욕에서는 ‘비싸 보이는’ 주소를 건물에 붙여 조금이라도 부동산 가치를 높이려 하며, 이 사례에서 ‘부동산, 학군 등 경제적 이해와 주소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으로 한국을 소개하기도 한다. 구글 지도로 전세계 구석구석을 들여다 볼 수 있고 해외쇼핑도 할 수 있는 지금, 디지털 주소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솔직한 심정도 털어놓는다. 김세미 기자 ab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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