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책지성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2021년 ‘올해의 책’을 선정했습니다. 올 한 해에도 매주 쏟아져 나온 책 가운데 중요하다고 판단한 책들을 고르고 열심히 숙독하여 책 기사를 쓰고 지면을 만들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헤아려 보니 마흔아홉 주입니다. 주요하게 읽고 다룬 책은, 줄잡아 500권가량이 넘습니다. 이 중에서 스무권을 고른다는 일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한겨레> 책지성팀이 올해를 되돌아 보며, 널리 깊이 많이 읽히길 바라는 책을 용감하게 골랐다고 생각해주시면 족하겠습니다.
선정된 책 스무 권에 담긴 열쇳말을 정리해 보니, 이토록 다종다양한 책에서 ‘연대’가 가장 큰 교집합이었습니다. 차별과 편견, 불평등과 불안, 격차와 갈등을 넘어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연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올해의 책’ 소개 순서는 가나다 순입니다. 책지성팀
원자핵의 비밀을 찾아내다

하늘에서 찾은 입자로 원자핵의 비밀을 풀다
김현철 지음 l 계단 인류는 강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방사선 덕분에 전자가 발견되고 원자핵을 알게 되고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찾게 됐는데, 양성자와 중성자가 좁디좁은 핵 안에 함께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은, 중력이나 전자기력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핵 안에 있는 입자 즉, 핵자를 묶어주는 핵력을 찾아나선 과학자들의 모험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탐사가 빛을 보아 오늘날 우리는 강력을 알게 되었다. 엑스선이 발견된 1895년부터 파이온을 찾아낸 1947년까지, 원자핵의 비밀을 찾아나선 숱한 과학자들의 대서사가 <강력의 탄생>에 담겨 있다. 용기와 열망, 호기심과 끈기가 물리학의 극적 서사를 펼쳐낸다.
코뿔소와 어린 펭귄의 연대

루리 글·그림 l 문학동네 “너는 파란 지평선을 찾아서, 바다를 찾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이야기를 전해 줘.”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태어나지만 코끼리들의 따뜻한 애정 속에서 자란다. 가족을 잃은 노든은 오른쪽 눈을 다친 펭귄 치쿠를 만나 친구가 된다. 치쿠가 품고 있던 버려진 알에서 펭귄이 태어나자 노든은 어린 펭귄을 데리고 바다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코끼리와 코뿔소, 펭귄은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들임에도 서로를 품어 안으며 ‘우리’가 된다. 사랑과 연대의 힘, 생명의 존엄성을 깊이 있게 그려내, 그림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감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초엽의 해’를 이끈 수작

김초엽 지음 l 한겨레출판 2021년을 ‘김초엽의 해’라 불러도 무리가 없겠다. 김초엽은 올해에만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와 짧은소설집 <행성어 서점>, 그리고 지난해 일부 회원용 도서로 출간되었다가 올해 일반 판매용으로 다시 나온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 등 소설만 세 권을 냈고, 김원영 변호사와 함께 장애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다룬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를 펴내기도 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출판인 설문조사를 토대로 그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다. <방금 떠나온 세계>는 장애와 의사소통이라는 열쇳말을 일관되게 밀고나간 완성도 높은 작품집인데다, 생태적 사유로까지 관심사를 넓힌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자본’ 읽기 동행할 든든한 친구

고병권 지음 l 천년의상상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함께 읽기 위해 철학자 고병권이 걸어온 대장정이 끝내 결실을 봤다. 마지막 12권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를 마지막으로, <자본> 1권을 풀이하는 해설서를 두 달에 한 번씩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2년 8개월에 걸쳐 모두 끝마친 것이다. “최대한 쉽게 쓰고, 최대한 자세히 쓰고, 최대한 깊이 읽어내고, 최대한 많이 읽어내자”는 지은이의 다짐은 단지 <자본>의 내용을 꼭꼭 씹어서 잘 전달하겠다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다. 노동자의 삶을 갈아넣어 굴러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실체를 파헤칠 수 있도록 ‘함께하는 책’(컴패니언 북)이 되겠다는 것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궁극적인 목표다.
중국 청년의 현실을 그리다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홍명교 지음 l 빨간소금 30대 사회운동 활동가가 1년간 중국을 여행하며 써내려간 기행문이자 르포다. 열악한 노동자들의 상황, 커지는 불평등, 체제 비판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 중국 현실을 고발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중국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지은이를 만나 한국의 노동자 운동을 궁금해하던 청년들은 공장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운동에 연대하다 당국에 의해 체포된다. 모임에서 만난 청년은 베이징대나 칭화대 같은 ‘명문대생’이 아니라 자신은 이미 ‘실패’했다고 말한다. 중국에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중국의 청년들도 한국과 다름 없이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과학기술과 장애에 관한 고찰

김초엽·김원영 지음 l 사계절 에스에프(SF) 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이 함께 썼다. 각각 청각장애와 지체장애를 지닌 이들은 당사자로서 과학기술과 장애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이들은 휠체어·보청기 등 ‘기계’의 도움을 받는 장애인을 ‘장애인 사이보그’라는 상징적 용어로 부르며, 장애 없는 상태를 정상적이라고 보는 비장애중심주의, 인류가 신체 한계를 과학기술로 극복할 것이라는 ‘기술 유토피아’를 비판한다. “지금 이곳의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장벽을 해결하는 일을 ‘언젠가’ 기술이 발전할 미래로 자꾸만 유예”하지 말고 “장애인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장애 경험 속에서 일상의 기술을 재구성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계와 대중 이어줄 새 공론장

지식의 사회, 사회의 지식
기획위원 김영욱·박동수·최민아·최화선 l 읻다 “시대와 분과를 가로지르는 지식의 교차로”를 표방하는 서평 무크지 첫 호. 대학과 논문이란 틀에만 갇혀온 우리 사회 연구와 지식 생산의 성과들을 ‘서평’ 형식을 통해 더 넓은 공론장으로 끌어내려 했다.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의식과 연구 성과를 책을 통해 확장하고 발전시키려는 연구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방식의 지식 생산과 유통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시도라 할 만하다. 한 해 두 차례씩 6호까지만 발행하며, 각 서평들을 단행본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다. 무너져내리고 있는 학계과 대중 사이의 다리를 다시 잇고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부인할 수 없는 비관적 전망

이산하 지음 l 창비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가 무려 22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악의 평범성>은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 유대인 수용소 이야기를 비롯해 6·25 전쟁과 5·18 광주학살, 세월호 등 나라 안팎의 비극을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그 비극들로부터 힘겹더라도 긍정적 전망을 끌어내 준다면 읽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은 심술궂다 싶을 정도로 회의적이고 비관적이다. 세상은 병들었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남은 문제는 “잘 지는” 것뿐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이런 비관이 악취미 때문이 아니라 세계의 실상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성찰한 결과라는 사실이 뼈아프다.
편견과 차별에 맞선 투쟁사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정창조·강혜민·최예륜·홍은전·김윤영·박희정·홍세미 지음, 비마이너 기획 l 오월의봄 김순석(1952~1984), 최정환(1958~1995), 이덕인(1967~1995), 박흥수(1958~2001), 최옥란(1966~2002), 박기연(1959~2006), 우동민(1968~2011). <유언을 만나 세계>는 이들 장애해방열사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했다. 야만과 폭정,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운, 죽음의 투쟁사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장애인 이동권·노동권·생존권을 얻고자 했다. 차별과 맞서 싸우는 일상은 장애인만의 것이 아니다. 아직도 장애인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이 누려 마땅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지만, 장애해방열사들이 남긴 ‘유언’은 사회에 크게 울려가고 있다.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가 기획하고 기록활동가 7명이 그들의 유언을 새겨넣었다.
능력주의 담론을 해부하다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박권일 지음 l 이데아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최대 화두로 떠오른 ‘공정성’ 담론을 비판하며, 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는 능력주의의 문제를 분석했다. 능력주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또한 보상에 접근할 기회가 공평했다고, 즉 과정이 ‘공정’했다고 간주되면 결과의 불평등은 수용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의 능력주의는 일종의 ‘위장된 신분제’로 이어진다. 사회경제적 조건, 부모의 지원 여부 등에 따라 출발선은 현격히 차이가 나고 실질적인 기회의 균등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불공정이 아닌 불평등이 시민적 관심사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결론이다.
<번역서>
‘책의 역사가’가 쓴 검열의 역사

국가는 어떻게 출판을 통제해왔는가
로버트 단턴 지음, 박영록 옮김 l 문학과지성사 ‘책의 역사가’라 불리는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2014년 저작으로, 국가 체제가 출판을 어떻게 통제해왔는지 ‘검열의 역사’를 살폈다. 검열은 무지막지한 권력이 자유로운 창작자를 물리적으로 탄압하는 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혁명 전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 영국 식민지배 아래에 있던 19세기 인도,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20세기 공산주의 동독에서, 검열은 ‘양질’의 도서에 특허를 내주는 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는 식으로, 기획과 집필 이전까지 출판의 모든 단계를 관리하는 식으로 각각 이뤄졌다.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된다는 이 디지털 시대에 검열은 또 어떤 방식으로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을까?
‘한-흑 갈등’의 뿌리를 찾아서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l 황금가지 한국계 미국 작가 스테프 차의 소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1992년 흑인들이 로스앤젤레스 한인 가게들에 불을 지르고 동양인을 무차별 폭행한 엘에이 폭동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그 폭동의 배경을 이루는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과 인권 유린 역시 부각시킴으로써 이른바 한-흑 갈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나아가 소수 인종끼리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주류 백인 체제의 ‘분할 통치’ 음모에도 눈길을 준다. 90년대 초의 과거와 2019년을 오가고, 한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추리적 기법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 작품으로 2020년 <엘에이 타임스> 도서상을 수상했다.
풍경으로 펼쳐낸 19세기 역사

19세기의 역사풍경
위르겐 오스터함멜 지음, 박종일 옮김 l 한길사 <대변혁>은 19세기 역사를 ‘풍경’으로 펼치는 ‘세계의 사회사’다. 21세기 세계 여러 지역의 얽히고설킨 혼재 상황과 문명 불안의 역사적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다. 지은이는 ‘근대’나 ‘근대성’의 특정 이해 방식에 매달리는 단선적 세계사 서술을 극복하며 지구적 차원의 변화 흐름과 지역의 예외를 함께 다룬다. 19세기의 새로운 역사 현상들이 유럽만의 고유한 성과가 아니고 유사한 발전과 변화가 비유럽 지역에서도 일어났음을 환기하지만, 19세기가 유럽의 세기였음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역사철학과 정치규범을 덜어낸 19세기 지구적 보편성을 통해 현대 인간 삶의 역동적 파노라마와 시간의 독특성을 맛볼 수 있다.
전집을 향한 ‘무모한’ 도전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2분책: 잉여가치론 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김호균 옮김 l 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남긴 자필원고를 있는 그대로 남김없이 출간하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한국어판의 첫 결과물 두 권. 숱한 자의적 편집과 각색, 왜곡을 걷어내면 앙상하게 도식화된 마르크스-엥겔스가 아닌 다양하고 풍성한 사유의 광맥으로서 마르크스-엥겔스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전집 전체 114권(현재까지 69권 출간) 가운데 한국어판은 일단 17권만 계약했는데, 9년에 걸친 분투 끝에 첫 두 권이 나왔다. 뚝심 있는 학술 출판사와 소수의 학자들이 ‘무모한’ 도전을 벌인 결과다. 씨앗을 뿌리는 이들의 일이 세대를 넘기더라도 계속되어 끝내 울창한 숲을 이루기를 응원할 뿐.
사소하지 않은 소수자 감정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l 마티 <마이너 필링스> 저자는 한국계 미국 이민 2세 여성이다. 1960년대에 이주한 부모에게 태어났다. 그는 여성으로서 인종주의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글을 썼다. 분노와 불안과 짜증이 행간에서 솟구친다. 음울함과 수치심도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그는 사소한 소수자의 느낌을 사소하게만 여길 수 없어 격렬하게 저항하거나 슬픔을 감내해야 하는 마이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인종 정체성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일은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는 편견을 한참 고수했는데, 그런 변명의 저변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그것을 비집어 열어야 했다.”
쓸모없는 일들이 늘어난다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병화 옮김 l 민음사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무정부주의 활동가인 고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대표 저서다. ‘불쉿 잡’은 종사자조차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쓸모없고 무의미한 직업이다. 로비스트, 컨설턴트, 광고·홍보·마케팅 전문가, 텔레마케터, 금융업 종사자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이런 직업이 전체 직업의 40% 가까이 되며 심지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진정한 가치들은 “상호 창조와 돌봄의 과정”에 있고, 보편적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불쉿 직업의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라고도 말한다. 노동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성찰해볼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사려 깊은 ‘정체성 정치’ 비판

계급, 인종, 대중운동, 정체성 정치 비판
아사드 하이더 지음, 권순욱 옮김 l 두번째테제 파키스탄계 미국인으로 사회운동에 깊이 간여해온 언론인 아사드 하이더의 ‘정체성 정치’ 비판. 정치를 공동체 참여가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의 인정 획득으로 환원해버리는 정체성 정치의 본질을 짚어낸다. 무엇보다 지은이 스스로 맬컴 엑스, 휴이 뉴턴, 컴바히 강 공동체 등 인종주의와 대결한 혁명적 사회운동의 역사 위에 굳건히 서 있기에, 수많은 구조적 억압들에 맞서면서도 정체성 정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해방의 정치’를 펼쳐낼 비전을 제시한다. 세대·젠더·지역·국적 등을 매개로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관련해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집단으로 맞서는 연대와 대중운동의 가치를 되새기도록 돕는다.
‘독자’라는 익명의 감시자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이규원 옮김 l 북스피어 격월간 문예지 <릿터> 최근호는 ‘문학에 있어 정치적 올바름이란’이라는 주제로 커버스토리를 꾸몄는데, 수록된 글 아홉 편이 모두 일본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일몰의 저편>을 재료로 삼아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물론 편집자의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 그만큼 이 작품이 문학과 정치적 올바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바를 던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필자에 따라서는 작가의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한 관점을 비판하는 견해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 작가를 위협하는 것이 국가나 권력의 검열이라기보다는 ‘독자’라는 익명의 감시자라는 사실을 부각시킨 데에 이 작품의 현대적 의의가 있다 하겠다.
‘탈성장 코뮤니즘’이라는 지향점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l 다다서재 코로나19 대유행이 자본주의 체제가 약속해온 ‘무한한 성장’ 신화를 뒤흔들며 올해엔 그 어느 때보다 ‘탈성장’ 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쓴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는 “이윤을 획득함으로써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멈추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탈성장 담론은 공허할 뿐이라고 지적하며 ‘탈성장 코뮤니즘’을 제시한다.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 연구로부터 생산력 지상주의와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부(富)의 민주적인 관리를 통해 근본적인 풍요를 추구할 수 있다고 본 마르크스의 사유를 새롭게 되새긴다. 일본에서는 2020년 출간돼 40만부 넘게 팔리며 주목을 받았다.
성별 소득 격차, 미국도 똑같다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l 생각의힘 미국 사회의 성별 소득 격차 문제를 분석했다. 여성들은 지난 100여년에 걸쳐 ‘커리어’와 ‘가정’을 함께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심지어 동일 학력, 동일 직종 내에서도 여전히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부부 중 누군가는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대응해야 한다. 반면 고용시장에서 고소득 일자리는 불규칙한 일정으로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여성이 전자의 역할, 남성이 후자의 역할을 맡게 되고, 이는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자격을 가지고 출발하더라도 갈수록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성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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