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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안경으로 13세기 아시아를 들여다보다

등록 2021-12-31 05:00수정 2021-12-31 11:43

13세기 피렌체서 만들어진 안경
15세기 중국 도착이 정설이지만
당대 조밀한 네트워크 살펴보면
송·원대 유입 가능성 높아

글래시스 로드
안경으로 읽는 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
한지선 지음 l 위즈덤하우스 l 2만원

우리나라 첫 안경 기록은 1606년 이호민이 쓴 <안경명>이다. “눈 어두운 사람이 쓰고 글을 보면 잔글씨가 크게 보이고 흐릿한 것이 밝게 보이도록 한 것”이라는 착용 후기다. 임진왜란 중일회담 대표인 심유경과 현소가 ‘안경잡이’라는 목격담도 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사신 일행이 베이징 상가에서 줄줄이 안경을 구입했다.

‘김성일(1538~1593) 안경’이 가장 오랜 실물이다. 옛 그림도 있다. 신윤복(1758?~1817?)이 그렸다는 풍속화 <영감과 아가씨>. 툇마루에 책을 펼쳐둔 채 마당 쪽 아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랑방 영감이 안경을 걸쳤다. 노화의 상징이다. 이하응 초상(1869)에서 탁상시계와 함께 탁자에 놓인 뿔테안경은 권세를 뜻한다. 얕은 관심자의 상식은 여기까지.

중국사학자 한지선이 쓴 <글래시스 로드>는 베이징 유리창을 넘어 안경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져 중국에 이르렀는지를 들여다본다. 안경 발명지는 1280년대 피렌체로 추정한다. “안경이 가장 쓸모 있는 기술 중 하나이며 발명된 지 20년도 되지 않았다”는 1306년 한 수도사의 발언이 적힌 기록이 근거다. 1352년 베네치아의 한 성당 벽에 그려진 안경 쓴 성직자 초상은 방증으로 읽힌다. 중국 유입을 전하는 믿을 만한 기록은 15세기 중후반, 즉 명나라 말기 인물인 장녕의 <방주집>. 베이징에 사는 친구의 아버지가 임금한테 하사받은 안경을 보았다는 전언인데, 선덕 연간(1425~35)에 유입된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발명품은 해로와 육로를 타고 조공 또는 밀무역 형식으로 15세기 초 중국에 도착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상은 기존 연구의 정리.

신윤복 풍속화첩 중 &lt;영감과 아가씨&gt;. 조선에 유입된 안경은 17세기 중반 이후 그 수가 급속하게 증가했는데, 이는 안경 문화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베이징 출입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신윤복 풍속화첩 중 <영감과 아가씨>. 조선에 유입된 안경은 17세기 중반 이후 그 수가 급속하게 증가했는데, 이는 안경 문화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베이징 출입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지은이 필력은 그다음부터다. 눈부실 만큼 비약한다. 안전한 기록에 근거한 피렌체~베이징의 시간적 거리는 120년인데, 그게 말이 되냐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노화한 눈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두배 이상 증가시키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자 말 한 필, 즉 자가용 한 대 값에 해당하는 고가품인데? 지은이는 송·원대에 유입되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송 이종(1224~1264 재위) 때 편찬된 <동천청록>에 실렸다는 “애체(안경)를 사용하면 시야가 밝아지는데, 그것은 말라카에서 온 것”이라는 명말청초 사학자 방이지(1611~1671)의 인용 기록을 중시한다. 정작 현전하는 <동천청록>에는 삭제되었기에 “믿을 수 없다”고 제쳐 두는데, 지은이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거다.

무엇보다 13세기 유라시아에 걸쳐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세계성을 거론한다. 칸의 나라에서는 33~45㎞ 간격으로 1400여개 역참 즉 네트워크를 두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흑해 연안의 초원지역까지 이란, 페르시아, 중국 전역 및 동남아시아의 물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는가. 지은이는 특히 인도양에 주목한다. 몽골 네트워크의 남단 호르무즈 항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매듭에 해당한다. 인도양으로 유입하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인더스, 이라와디, 차오프라야, 메콩강 등은 또 다른 내륙 깊숙한 배후지로 이끄는 핏줄이다.

흔히 명·청대 조공체제를 꽉 막힌 것으로 아는데, 지은이는 송·원대 네트워크를 계승한 ‘통제된 개방’ 시스템으로 본다. 조선 연경사 일행이 그곳 선비들과 교유하고 안경을 들여온 것도 증거 가운데 하나다. 지은이에게 안경은 13세기 이후 중국 실정과 당대 교역 시스템을 새롭게 규명하기 위한 메타포인 셈이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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