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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비밀 협동번식…“돌봄 있었기에 큰 두뇌 만들어진 것”

등록 2021-12-31 05:00수정 2021-12-31 11:42

[한겨레Book] 정인경의 과학 읽기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유지현 옮김 l 에이도스(2021)
인간은 특별한 생명체다. 과학자들은 그 특별함의 객관성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생물 종으로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찾고, ‘인간다움’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유전학, 영장류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탐구하는데 조금씩 관점에 차이가 있다. 일례로 뇌과학자 조지프 르두는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에서 “오직 인간만이 자기주지적이고 의식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자의식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고, 미래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르두는 자의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면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마이클 토마셀로는 “인지 기능에 있어 인간과 다른 종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는 공동의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동적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뇌과학자는 ‘우리는 우리 뇌다’라고 하지만 영장류학자는 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인간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서 협력할 줄 아는 존재다. 자신의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믿고, 사랑하길 원한다.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는 이러한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회성일 것이다.

진화생물학자이며 인류학자인 세라 블래퍼 허디는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서 사회성의 기원을 찾아 나섰다. 인간은 언제부터 협력적인 유인원이 되었나? 침팬지처럼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인 유인원이 어떻게 서로 나누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별난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 허디는 진화 과정에서 어머니와 아기가 담당했던 역할을 재구성하고, ‘협동번식’이라는 독창적인 가설을 논증한다. 큰 뇌를 가지고 무력하게 태어난 인간 아기는 유달리 손이 많이 가고 천천히 성장하였다. 홍적세의 척박한 환경에서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없었다. 공동체의 동료들이 나서서 아이들을 돌보고 부양하는 대행부모 노릇을 했는데 이러한 협동번식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는 사회적 지능을 발달시켰다.

“대행부모가 없었다면 인류라는 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디는 15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에서부터 협동번식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직립 보행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한 호모에렉투스는 두뇌 크기가 커졌고 수명이 길어졌으며, 무엇보다 여성의 몸무게가 크게 증가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남성의 체격이 여성보다 거의 두배 컸던 것에 비해 호모에렉투스 남녀의 몸집 차이는 18퍼센트 정도로 줄었다. 어머니 주변 친족의 도움을 받아 여성이 성장하고, 자식을 키우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허디는 협동번식이 더 큰 두뇌로 진화하는 ‘선행조건’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두뇌가 있어야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봄이 있었기에 큰 두뇌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지은이는 생명의 진화사에서 모성과 젠더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인간다움을 어머니와 아기의 관계에서 발견하고 모성 본능과 대행부모, 협동번식이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을 만들었는지 탐색하였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진화의 역사에서 다른 서사가 가능하고 더 나은 과학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협력하는 인간이 되기까지 공동 돌봄의 진화적 유산이 있었음을 잊지 말도록 하자. 결국 이웃의 따스한 보살핌이 우리 인간을 만들었음을.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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