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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밤마다 악어 이빨을 싹싹

등록 2022-01-21 04:59수정 2022-01-24 11:09

[한겨레Book]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와그르르 와그르르
우리 집에 악어가 산다
네지메 쇼이치 지음, 고마쓰 신야 그림, 고향옥 옮김 l 달리(2019)

동네 치과 치료실 안쪽에서 한 어린이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온 병원의 선생님들이 “너무 잘한다!” “힘들지? 다 돼가.” “와, 정말 잘 참네!” 하며 칭찬을 쏟아냈다. 의사 선생님이 “여기 치료할 때 이렇게 잘 참는 어린이는 처음이야” 하는 말씀에는 진심이 담겨 있는 듯했다. 선생님은 다음 과정을 설명하고는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저 어린이 대단하다’, ‘끝나가서 좋겠다’. 대기실에서 나도 속으로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그때 어린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중요한 말인 듯한데 발음이 잘 안 되는지 선생님이 잠시 장치를 제거해주셨다. 그러자 어린이의 질문이 또렷이 울렸다. “그거 아파요?” 선생님들도 대기실의 사람들도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잘 참는 어린이라도 격려와 칭찬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전체 과정을 다시 설명한 뒤, “방금 한 치료랑 비교하면 하나도 안 아파” 하고 안심시켰다.

<와그르르 와그르르>는 밤마다 악어의 이빨을 닦아 주는 ‘나’의 이야기다. 악어는 무슨 사연으로 이 집 아래에 살게 되었는지, ‘나’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악어 입속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중요한 의례인 듯 작업복을 차려입은 다음 정성껏 장비를 갖추어 악어를 찾아가는 모습에서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악어의 반응도 재미있다. 무섭게 ‘나’를 노려보다가 이빨을 닦는 것을 알고는 입을 쩍 벌린다. 악어에게도 밤마다 치르는 중대한 의식 같다.

이빨을 닦는 과정 또한 정연하고 단호하게 진행된다. ‘나’는 악어가 입을 닫지 못하게 막대기를 괴어 놓고, 손전등으로 입안을 비추어 상태를 확인한다. 커다란 이쑤시개로 잇새에 낀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고, 기다란 칫솔로 구석구석 이빨을 닦는다. 충치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발견될 때는 독자도 꽤 긴장이 되고, 그게 물고기 비늘이라는 걸 알고는 그만큼 안심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악어가 참지 못하고 입을 다물려고 한다. ‘나’는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까? 힌트는 면지에 그려진 ‘나’의 장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쓰인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잠옷을 입고 자기 이를 닦고 있다. 악어의 이빨을 닦는 이 의식은 어린이의 양치질인 셈이다.

어린이에게 양치질이나 치과 진료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그림책은 많다. 대부분 ‘보이지 않는 세균’이 얼마나 무서운지, 치과가 얼마나 친절한 곳인지 설명하는 식이다. 이 그림책은 다른 길을 택했다. 양치질이며 치과 검진을 어린이가 스스로 수행하는 흥미로운 모험으로 묘사했다. 어린이에게 겁을 주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긴장을 유지하는 점이 좋다. 물론 치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대개 ‘모른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무서우니 조심하라거나 무조건 용기를 내라는 말로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정확하고,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설명을 찾는 것. 그것이 그림책의 즐거운 고민이다. 유아. 독서 교육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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