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우리 책방은요 - 인천 ‘시방’
오랜 정취가 남아 있는 인천 만수시장 한적한 골목에, 2019년 가을, ‘시방’을 꾸렸습니다. 낡고 허름한 건물에 7평짜리 좁은 공간이었지만, 육아로 꿈을 펼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저는 넉넉한 숲의 품에 안겨 있는 안락함을 느꼈습니다. ‘과연 책방을 여는 게 옳은 선택일까?’ 종종 혼란에 빠졌지만, 책방 자리를 보고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청약통장을 해약하여 보증금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시방의 첫 문장을 시작하였습니다.
시방은 시(詩)를 접하고 공유하는 공간, 만수시장에 위치하여 ‘(시)장에 있는 책(방)’의 함축적 의미, 무엇보다 지금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해 원하는 삶을 영위하고 싶은 저의 가치관이 담긴 시방(時方, 지금)을 뜻합니다. 지난 2년2개월 동안 책, 공간, 사람, 취향을 사람들과 나누며 작은 공간의 가치를 재생산하고자 다양한 기획을 선보였습니다. 아담하지만 아늑하고 쓸모있는 공간을 지향하여 지역민이 동네에서 문화와 여가를 유용하게 즐길 수 있도록 문화·여가 거점 공간을 자처하며 ‘책방’의 쓰임에 ‘취미관’을 추가하였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구상의 시 ‘꽃자리’ 중) 육아로 세계에서 한 발치 물러나 살다가 책방 주인이라는 꿈을 실현하게 한 이 자리가 구상 시인의 시구절처럼 시방 꽃자리입니다.
책방에서는, ‘시 쓰는 엄마들의 모임, 시(詩)엄마’ 1·2기, 경력단절 여성들을 마을문화교육활동가로 양성하는 ‘디딤 프로젝트’, 주부들의 자아탐구를 위한 ‘정아은 소설가의 나를 두드리는 글쓰기’, 엄마들의 쉼표 ‘그림책 테라피’ 등 엄마 자신을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을 주로 마련했던 것 같아요. 엄마들은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 다독였습니다. 그녀들은 ‘시방 덕분에’라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했습니다. ‘시방’은 저에게 그랬듯 몇몇 엄마들에게 인생의 길잡이별이 되어주었어요. 박준 시인이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라고 썼듯,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들의 말과 함께한 시간이 저의 마음속에 오랜 여운으로 남을 듯싶습니다.
안타깝지만, 이제 ‘시방’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에 가름끈을 끼워 넣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올해 일곱 살이 된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예전만큼 필요로 하지 않아서 이제야 허리를 펴고 숨 좀 고르려던 찰나에 새로운 생명이 찾아와 주었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여전히 책방을 접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그동안 타인에게 쏟은 응원을 이제 저 자신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시방은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제 인생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시방, 누군가에게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처럼 따스하고 든든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인천/글·사진 이수인 동네책방 시방 대표

아담하지만 아늑한 7평짜리 동네책방 ‘시방’. 동네에서 문화·여가 거점 공간을 자처하며 ‘책방’의 쓰임에 ‘취미관’을 추가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시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정신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등불이었다’라는 시인 네루다의 말처럼 ‘시 쓰는 엄마들의 모임, 시(詩)엄마’는 시를 매개로 엄마들의 연대를 형성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나를 쓰다듬는 시간을 나누었다. 1기는 신현림 시인이, 2기는 이병국 시인이 강사로 초빙되었으며 1기는 기념시집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독서 모임, 릴레이 글쓰기, 독후 드로잉, 그림책 만들기, 마음 해독 라디오, 마을교육공동체 강의, 마을 속 직업체험, 작가와의 만남, 작은 전시회, 마을 기록 책자 제작, 초등학생과 할머니들 대상으로 수업 등을 진행해왔으며, 수익금이 발생할 경우 기부라는 선순환을 실천하였다.

임신으로 인해 이제 ‘시방’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에 가름끈을 끼워 넣어야 할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시방은 해녀들의 숨비소리처럼 내 인생의 숨을 고르던 시간이었는데 비록 공간은 사라지지만 누군가에게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처럼 따스하고 든든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연재우리 책방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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