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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갈라진 세상에 다리가 되어볼래요?

등록 2022-02-25 04:59수정 2022-02-25 10:02

[한겨레BOOK]
덴마크 최초 소수민족 여성 의원
인종차별·혐오에 맞선 투쟁기
자신 안의 차별주의자 발견하고
위험 대면해 얻은 지혜와 깨달음
덴마크 최초로 소수민족 출신 여성 국회의원을 지낸 외즐렘 제키지가 지난 2018년 9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하는 모습. 타인의사유 제공
덴마크 최초로 소수민족 출신 여성 국회의원을 지낸 외즐렘 제키지가 지난 2018년 9월 미국 뉴욕에서 강연하는 모습. 타인의사유 제공

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비폭력 투쟁기
외즐렘 제키지 지음, 김수진 옮김 l 타인의사유 l 1만9000원

지은이만 쓸 수 있는 책. 그런 게 좋은 책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괜히 읽었다는 후회는 없다. <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가 그렇다. 말 섞고 싶지 않은 집단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담이다.

지은이는 덴마크 최초로 소수민족 출신 여성 국회의원을 지낸 외즐렘 제키지(46). 터키 쿠르드족 출신으로 어려서 덴마크로 이주했다. 간호사가 되어 일하면서 의료환경을 고치려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간호사협회를 거쳐 정당정치에 뛰어들어 약 8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키 큰 백인 데인족이 주류인 나라에서 키 작고 가무잡잡한 ‘파키’(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권 이민자를 칭하는 비어) 여성이 인플루언서가 되어 설치니 눈꼴 셔 하는 사람들이 오죽 많았을까. “네 나라로 꺼져” “테러리스트년” 등 인종차별적 폭언을 해댔다. 한 네오나치는 아이와 나들이 나온 동물원까지 스토킹했다.

아들이 물었다. “그 사람은 엄마를 잘 알지 못하면서 왜 그렇게 미워하는 거예요?” 지은이 왈.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우리는 착한 편이고 그 사람은 나쁜 편이야.” 넓디넓은 세상에 조각 같은 삶.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들 많은데 굳이 지스러기 만나 얼굴 붉힐 일 있나. 눈 딱 감고 착한 우리 편끼리 오순도순 지내면 그만이지.

친구한테 스트레스를 털어놨다. 멍청한 네오나치 때문에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위로와 동조는커녕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듯, 너도 지금 그런 사람들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잖아.” 친구의 골 때리는 말 덕분에 지은이는 문득 자기 내면에 숨은 인종차별주의자를 응시할 수 있었다. 자신을 온당하게 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악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지은이는 자신에게 혐오메일을 쏘아댄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눔으로써 대상과 자신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기록했다. 선지식을 찾아 천하를 헤맨 선재동자처럼. 지은이가 용감하게 위험과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아이들 미래는 나아져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서 기대가 깨졌다. 그토록 증오 가득한 메일을 보낸 순악질 집은 너저분한 돼지우리가 아니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이는 머리카락과 손톱이 길거나 더럽지 않았다. 점잖은 신사는 부모님과 똑같은 커피잔 세트에 다과상을 차려 놓았다.

순례 끄트머리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헤브론 시. 대대로 무슬림이 살아온 그곳에 미국 출신 유대인이 이스라엘 군인의 보호를 받으며 ‘정착’하고 있다. 공습으로 반파된 주택건물 위층을 고쳐 입주한 그들은 아래쪽 선주민 구역으로 벽돌과 쓰레기를 투척한다. 고층 공사장처럼 골목길 하늘엔 그물이 쳐졌고 그물은 낙하 오물과 위험물로 덮였다. 지은이는 거기서 악화하는 혐오의 끝을 보았다. 만나 본 사람들의 특징. 분열과 불화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난하는 대상은 나 아닌 남이었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도 그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의회, 지방정부, 학교, 이웃 등.

갈라진 세상에 다리가 되어볼래요?

지은이가 말하는 대화 십계명. 친절하게 말하라. 칭찬하라.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라. 공통된 출발점을 찾아라. 사람을 보라. 경청하고 공통된 언어를 찾아라. 함께 음식을 먹어라. 함께 웃어라. 희망을 간직하라. 우정을 쌓아라.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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