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제전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 최파일 옮김 l 글항아리 l 2만9000원
미술전시를 말하려면 전시된 작품들은 물론 작품 배열, 그리고 관객 반응을 거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말하려면 전투의 전개, 전략과 무기, 장군과 병사는 물론 병력과 물자의 공급원인 후방, 전쟁의 토대가 된 사회적 배경, 그리고 전쟁이 낳은 변화상을 기술해야 한다.
전쟁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전투들과 거기에 쓰인 전략과 무기를 다루는 데서 멈춘다. 병참과 병사 이야기로 나아가면 금상첨화다. 세계대전을 다룸에 그 정도면 ‘할배요’라 하겠다. 그만큼 덩치가 크고 복잡하기에 가독성 있게 기술하려면 공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봄의 제전>은 1차 세계대전 이야긴데, 기존 ‘할배요’ 전쟁사와 격이 다르다. ‘전투에 관한 사실은 다 안다 치고’에서 출발해 병사, 후방, 토대의 변화상을 다루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의 사회문화사라고나 할까. 3·1운동을 촉발한 민족자결주의가 1차 대전의 파생물이란 정도의 이해에 그치는 필자로서는 ‘기초 전쟁사’를 수시로 참조해야 하는, 번거롭기 짝이 없는 책이다. 다행스럽게도 탄탄한 짜임새가 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1차 대전 발발 1년여 전인 1913년 5월 파리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극 <봄의 제전>이 초연됐다. 반란의 에너지와 희생 제물의 죽음을 통해 삶을 찬미하는 내용인데, 무용수들의 생경한 몸동작과 귀에 거슬리는 음악으로 객석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극이 상연된 곳은 샹젤리제 극장. 최신 건축재인 강화 콘크리트로 갓 지어진 민짜 건물이다. 발레극과 샹젤리제 극장, 공히 모더니즘 발전의 이정표라는 평가다.
피나 바우슈가 감독한 독일 부퍼탈 시립무용단이 2008년 2월 영국 런던에서 공연한 ‘봄의 제전’의 한 장면. ©Alastair Muir/Shutterstock, 글항아리 제공
지은이는 <봄의 제전>을 1차 세계대전의 징후 또는 축소판으로 본다. 책의 머리에서 <봄의 제전>의 내용, 작곡자, 기획자, 무용수를 상술하고 관객의 반응을 더한 다음 책의 몸통에 해당하는 1차 대전의 그것으로 나아간다. 작게는 적의 기관총 앞으로 돌진하는 것으로 병사의 용기를, 사상자의 숫자로 부대의 기개를 가늠하는 전투와의 상관성을 보이고, 크게는 대전쟁이 모더니즘 즉 현대를 낳았다는 주장이다. 큰 동심원 두 개로 짜인 셈인데, 3막 10장의 극 구조로 풀어나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라트비아의 역사를 개인의 회고와 맞세워 기술한 <새벽부터 걷기: 동유럽, 제2차 세계대전, 우리 세기의 마음 이야기>, 반 고흐의 사후 성공을 위조범 오토 바커의 행적과 함께 조명한 <태양의 춤: 천재, 위작, 확실성의 쇠퇴> 등 다른 저술로 미루어 장르를 넘나드는 공교함이 지은이의 특장임을 알겠다.
지은이는 1차 세계대전을 최초의 대규모 부르주아 전쟁이라고 본다. (이전의 전쟁은 왕조 사이의 전쟁, 봉건적, 귀족적 이해관계 또는 군주 사이의 대립에 기인했다.) 19세기 말 정부, 공공기관이 중간계급에 의해 운영되고 은행, 기업체의 주축이 중간계급이었다. 군대 역시 장교에서 말단병사까지 그쪽 출신이라는 것. 병사 개인의 행위, 군사조직, 심지어 전략과 전술까지 중간계급의 가치가 지배했다. 침략자에 맞서 가족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동료에 대한 책임감과 전우애 등이 그것. 강제적인 군 복무제도, 서부전선에서의 참호전, 기습전술에 대한 도덕적 거리낌 등이 그 예에 속한다.
전후방 경계가 사라진 것도 특징이다. 독일 잠수함은 연합국 군함은 물론 민간인 배를 공격했다. 여객선 팔라바호 공격으로 100명 이상이, 루시타니아호 격침으로 2000여명이 숨졌다. 군인과 민간인, 중립국과 교전국의 구분을 거부한 이러한 군사행동은 연합국 쪽의 똑같은 반응을 불렀으니 자원입대 행렬과 중립국 참전으로 이어졌다. 대형 장거리포 도입도 그렇다. 도시에 떨어진 포탄은 군인과 민간인, 군용-민간용 시설을 가리지 않았다. 화염방사기와 독가스의 사용은 전쟁의 양태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참호전을 경험한 병사들의 편지글에는 미의식의 변화가 보인다. 사람의 뇌수가 전우의 모자에 튀는 광경을 “시적 산물”로, 아침에 일제히 울리는 포성을 음악으로 기술하고, 파리 공습에서 <봄의 제전>을 연상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누런 진흙이 말라붙은 시체에서 ‘청동으로 만든 조각상’을 떠올린다. 언어사용에 변화가 생겼다. ‘포탄으로 땅이 갈아엎어졌다’식의 말 대신 ‘힘든 시간’를 보냈다거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는 완곡어법을 썼다. 경우에 따라 형용사를 전혀 쓰지 않는 절제화법을 추구했다. 이러한 변신은 다다이스트의 음성적, 의성어적 어휘구사와 통한다.
군수와 병참은 전후 민간으로 전이됐다. 교통이 버스와 열차를 이용한 체계로 바뀌고, 소도시까지 영화관이 번졌으며, 라디오방송이 본격화했다. 제대군인의 귀향과 더불어 도시와 농촌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구실을 했다. 사회적 장벽도 마찬가지다. 참호 안에서 지식인들은 노동계급에 의존하고, 귀족들은 농부한테 의지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돌격대를 뜻하는 아방가르드는 패션, 건축, 그림(예를 들어, 피에트 몬드리안) 등에서 곡선의 자리에 움직임과 단순함을 암시하는 직선이 대체되는 식으로 구현됐다. 여자들은 목과 발목을 덮는 옷에서 해방되어 보이시 룩과 짧은 머리가 유행했다.
흥미로운 주장 하나. 1914년 여름은 햇빛이 좋고 달이 밝았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길 즐겼다. 독일 시민들은 애국주의를 품고 광장으로 쏟아졌다. 그들의 목소리에 응하여 정치인들은 신중한 태도를 버렸다.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며 전쟁 속으로 들어간 데는 날씨 탓이 컸다는 얘기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