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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

등록 2022-03-11 04:59수정 2022-03-11 09:07

스킨
E. M. 리피 지음, 송예슬 옮김 l 달로와 l 1만5800원

“내가 다 먹을 거예요. 혼자서.”

감귤 주스와 가스파초, 스프링롤, 나시고랭, 코코넛 크림 파이를 주문하고 튀김 요리 라지 사이즈와 병아리콩 현미 카레밥, 캐슈 아이스크림, 로컬 커피를 추가로 시킨다. 일행이 있느냐는 웨이트리스의 말을 가볍게 받아쳐 넘기고 음식이 차려지기 무섭게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입으로 쑤셔 넣는다. 나가는 길에 식당에 딸린 식료품점에 들러 구운 땅콩 한 봉지와 치즈, 향신료를 넣은 바게트를 산다. 진열장 안에 있는 티라미수는 통째로 포장한다.

후회와 환멸, 자기혐오에 괴로워하면서도 나탈리는 멈추지 못한다. 남들보다 뚱뚱하고 거대한 몸뚱이가 타인들 사이에서 경멸의 대상이 될 거라는 우려는 늘 배가 터질 듯한 폭식으로 이어진다. 늘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검열하고 평가하면서 주변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며 살아간다. 그러다 실제로 자신을 보고 낄낄거리는 사람과 마주치면 겨우 형태만 유지하고 있던 자존감은 가루가 되고 만다.

첫 소설 <레드 더트>로 아이리시 북 어워드와 루니 아이리시 문학상을 수상했던 E. M. 리피(사진)의 신작 <스킨>의 주인공 나탈리는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인생의 목표를 찾으러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발리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페루를 여행하며 여러 사람을 마주한다.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를 무시하고 상처를 주는 남성을 만나 아파하기도 한다.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된 사람, 그를 사랑하는 사람, 그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을 스치며 낯선 이들과 경험들을 두려움 없이 맞이하게 된다. 새로움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하나씩 느껴 나가는 주인공의 설렘이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독자에게 스며든다.

“모두가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사는구나. 그리고 저마다 대처법도 알고 있어.”

이쑤시개 두께만큼의 ‘유리 멘탈’이 맥없이 무너질 때마다 폭식에 허우적대던 주인공은 스스로의 주체성을 가지고 삶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다. 나이테처럼 피부에 새겨지는 나이와 경험들, 흉터가 보기 싫다고 외면하고 피하다 보면 다가올 시간에 똑바로 맞설 수 없다. 소설은 나이에 압박감을 느끼는 여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남성 등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찬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김세미 기자 abc@hani.co.kr, 사진 달로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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