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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911년생 사회주의자 해녀가 살아낸 세월

등록 2022-04-01 04:59수정 2022-05-26 15:37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민화 속 흰호랑이 같던 김진언
사후 23년 만에 출간 논픽션
그가 겪은 4·3, 체포, 전쟁, 북한…
1992년 여름 제주 북촌리 자택에서 김진언 할머니가 지은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1992년 여름 제주 북촌리 자택에서 김진언 할머니가 지은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은행나무 제공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여성해방의 꿈을 꾼 제주 4·3 여성운동가의 생애
양경인 지음 l 은행나무 l 1만2000원

“내가 죽으면 발표하라.” 논픽션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는 주인공 김진언(1911~1999)의 당부에 따라 사후 23년 만에 나왔다. 지은이 양경인은 1987~1992년 할머니를 만나 그가 살아낸 세월을 들었다. 가족사는 만난 지 3년 만에 단둘이 있을 때 털어놨다.

김진언은 제주도 조천면 북촌리 생이다. 1947년 3월1일 시위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잔혹한 진압 즉 ‘제주 4·3’ 발발 당시 36살이었다. 맞다. 그는 제주 4·3 관련 인물이다. 북촌리는 토질이 박하여 물질을 주업으로 삼은 까닭에 빈부 차 없이 고만고만한 터라 단합이 잘됐다. 4·3 당시 중산간 마을, 와흘, 선흘까지 합쳐 ‘해방구’였다.

그는 1946년 조선공산당원이 됐다. 물질해 번 돈으로 장만한 ‘갯가바위집’은 마을과 떨어진 채 울을 둘러 아지트로 맞춤했다. 세포위원장인 주인(남편을 그렇게 부름)은 본가가 동네에 있는데도 거기서 지냈다. 그해 말 사람들은 마당에 펼쳐놓은 교자상에서 당원 가입서를 썼고 그는 종일 밥을 해 날랐다.

부녀회에서 총무로 활동했던 그는 1947년 봄 여성동맹 부위원장이 됐다. 집집이 방문하여 남북통일, 여성평등을 설파했다. 일행이 신촌 과부마을에 들어서면 집을 통째로 내줬다.

그해 중반 이후 청년들은 경찰을 피해 산으로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여맹은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밥을 해 이고지고 산사람이 된 마을사람들을 먹였다. 3·1사건으로 징역 갔다 돌아온 이달군. “아이고 네상(누님), 어찌나 맛있는지 밥만 먹어졈수다.” 김진언은 맹원들보다 일찍 입산했다. 조천 장날 저녁에 마을로 내려와 ‘여성선진사업’을 했다. 겨울이 되면서 주민들 분위기가 달라졌다.

1948년 가을은 풍년이었다. 밤 이슥히 내려와 조를 베고 동이 틀 무렵 아지트로 올라갔다. 조 열다섯 섬을 거둬 열 섬을 산으로 올렸다. 11월 옷 갈무리를 위해 집으로 갔다. 마당 가득 득시글거리고 웃음소리와 음식냄새가 담을 넘던 집은 먼지가 쌓이고 호박 넝쿨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겨울이 되자 토벌대는 여맹본부 바로 밑까지 올라왔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하고 눈판에 쓰러진 소와 말이 그득했다. 언제부턴가 산사람들은 항문에 피가 나면서 대변을 못 보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젊은이들은 “누님, 누님 신발 좀 줍서” 애원하였다. 야습으로 죽은 사람 신을 모아 아지트를 찾아가니 시냇가 바위 위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신발을 신겨주면서 “동무들! 이 신발 신고 끝까지 싸웁시다”라고 말했다. 그 신발 신고 저승길이라도 편하게 가라는 마음이었다.

1949년 5월5일 선흘리 보리밭에서 풋보리를 뜯다가 체포됐다.

책의 반은 후일담인데, 정작 그것이 사후 출판 빌미가 됐다. 1950년 한국전 초기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난 그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갔다. 항공사령부 식사당번이 됐다. 간부와 졸병 사이의 음식, 군복 차별을 보고 지도원 간부에게 대들었다. “우리 제주에선 이렇게 하지 않았소.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모두 공평하게 했소.” 그는 가짜 부부로 꾸며 남으로 가라는 당의 명령을 거부했다. 1952년 단신 월남했다가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전향서를 쓰고 1974년 출소했다.

지은이는 늠름한 체구에 백발인 김진언 할머니가 잔잔히 웃는 모습이 민화 속 호랑이 같았다고 했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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