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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최종후보 정보라 “슬라브문학 자유·환상성 영향 받았죠”

등록 2022-04-14 15:39수정 2022-04-15 09:52

‘저주토끼’ 정보라·번역가 안톤 허 간담회
“다음 작품은 남자들 죽이는 여자 이야기”
취미 질문에 “데모요”…소수자 인권 관심
안톤 허는 “한국문학 풍요롭다” 거듭 강조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소설집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오른쪽)와 번역가 안톤 허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소설집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오른쪽)와 번역가 안톤 허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l 아작 l 1만4800원

“제 책 <저주토끼>를 읽은 주변 분들에게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화장실에서 뭐가 나올까 봐 두렵다는 거였어요. 그 때문에 변비에 걸리셨다는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웃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상 속 사물이나 인물에서부터 출발해, 그로부터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소설을 씁니다. 그런데 특히 일상 속 인물은 그 정황을 그대로 쓰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야기는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만들려고 해요.”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는 14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주토끼>에는 단편 10편이 묶였는데, 이 가운데 ‘머리’라는 단편은 화장실 변기에서 난데없이 머리 하나가 출현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다음달 26일 발표를 앞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작가와 번역자에게 함께 시상을 하는데, 이날 간담회에는 <저주토끼>를 번역한 번역가 안톤 허도 자리를 함께했다.

“정보라 작가님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우선 든 생각은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거였습니다. 장르문학에 대해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오해가 많은데, 정 작가님은 아이러니와 반어를 많이 구사하신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영미권에 아주 잘 먹힐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야기도 너무나 재미있고, 여러모로 너무나 잘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저주토끼>에 실린 작품들은 독특한 상상력과 허를 찌르는 반전, 서늘한 결말이 인상적이다. 초현실적 환상과 에스에프적 설정에 자본주의 비판과 강력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내장했다. 정보라 작가는 “제가 여성이다 보니 여성주의적인 이야기가 안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며 “대학 시절 상금이 탐나서 응모한 ‘머리’로 문학상을 받게 되자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싶었고, 그 뒤로는 내가 별로 주목을 받는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쓰고 싶은 대로 쓰자 싶어서 자유롭게 썼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문학에는 낯선 환상성을 주된 특징으로 삼는 소설 세계는 그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지역학 석사를 거쳐 블루밍턴 인디애나대학에서 슬라브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로 선정된 &lt;저주토끼&gt;의 작가인 정보라 소설가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로 선정된 <저주토끼>의 작가인 정보라 소설가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제가 소비에트 ‘빨갱이’ 문학을 전공했어요. 옛 소련에서 스탈린의 폭압이 시작되기 전, 혁명 이후 10여년 동안은 예술이 정말 자유로웠던 시기입니다. 그 무렵을 중심으로 한 슬라브 문학의 자유와 환상성에 저도 영향을 받았죠.”

정보라 작가는 2008년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부문 우수상, 2014년 제1회 에스에프 어워드 중단편부문 본상을 받았고 지난해 12월부터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3기 대표를 맡고 있다. 조선의 나선정벌을 소재로 삼은 에스에프 장편 <붉은 칼>과 고 변희수 하사 이야기를 표제작으로 삼은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 등을 냈다. 그는 또 전공을 살려 러시아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비롯해 <유로피아나>(파트리크 오우르제드니크) <탐욕>(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등의 번역서를 내기도 했다.

번역가 안톤 허는 그가 번역한 <저주토끼>와 함께 박상영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역시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 작품들에 앞서 <리진>(신경숙) <수인>(황석영) 등을 영어로 옮겼고 <바이올렛>(신경숙) <무한화서>(이성복) 등의 영역본과 오션 브엉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 한국어 번역본 등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안톤 허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번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만 해도 영어 번역으로 부커상을 먼저 받은 뒤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저는 토카르추크가 번역자 덕분에 노벨상을 받았다고 과감하게 말하고 싶다”는 말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로 선정된 &lt;저주토끼&gt;의 번역가 안톤 허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로 선정된 <저주토끼>의 번역가 안톤 허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번역가로서 저는 한국문학이 외국에서 평가되는 지평을 넓히는 걸 일종의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이나 대산문화재단 같은 기구들 그리고 문학 교수들이 밀려고 하는 특정한 문학이 있는 것 같고, 문학권력이란 게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번역가들이 생각하는 한국문학은 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심리적 성별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 중년 남성 작가들만의 문학은 아니거든요. 여성문학, 장르문학, 에스에프 등 풍요로운 문학이 한국문학이란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안톤 허가 번역한 정보라 소설집 &lt;저주토끼&gt; 영어판 표지.
안톤 허가 번역한 정보라 소설집 <저주토끼> 영어판 표지.

부커 재단은 <저주토끼>를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로 지명하면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고 평가했다. 정보라 작가는 “세상의 불의와 부정에 대해 저주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상황을 겪은 생존자들이 그 기억과 경험을 깨끗이 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의 이야기만으로 된 판타지를 다음 책으로 낼 예정”이라며 “소수자와 고통 및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은데, 그런 것만 쓰면 독자들이 힘들 테니까 지금은 문어, 대게, 상어, 멸치, 김 같은 해양수산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쓰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평소 즐기는 취미나 활동을 묻는 질문에 정 작가는 “데모요”라고 짧게 답했다.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은 그는 세월호 진상 규명 집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등급제 폐지 시위, 차별금지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 ‘낙태죄’ 폐지 1주년 시위 등에 부지런히 참여하고 있다.

한편 <저주토끼>는 미국 대형 출판 그룹인 아셰트 출판그룹 산하 알곤퀸에 판권이 팔렸다. 이 책은 또 일본, 중국, 스페인, 브라질, 독일 등 15개 나라에 판권이 판매되었거나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출판사 쪽은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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