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 브뤼헨 <촛불 옆에서 글 쓰는 노인>(1627~29)
서양 미술과 촛불
김승환 지음 l 아르테스시각문화연구소 l 3만8000원
애초 관심은 독일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90)였다. 초와 해골을 모티브로 한 바니타스 정물화가 27점이란다. 출신지가 드레스덴임을 떠올리면 아하! 할 테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수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곳.
리히터의 정물화는 17세기 프랑스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1593~1652)로 이어진다. 그는 10여년에 걸쳐 ‘참회하는 막달레나’ 시리즈를 그렸다. 인물과 함께 촛불과 해골이 등장한다. 작가의 고향 로렌은 30년 종교전쟁의 중심으로 주민들 절반이 학살됐다. 공통점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반 혼트호르스트 <대제사장 앞의 그리스도>(1617)
조선대 미체대 김승환 교수의 끈질긴 관심은 서양의 촛불 그림 전체로 확산됐다. 5년에 걸쳐 촛불이 들어간 그림은 모두 들여다봤다. 상호 연결고리를 파고든 결과물이 <서양미술과 촛불>이다. 지은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면 근현대 서양미술에 등장하는 촛불은 우리네 기억투쟁과 흡사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위생병으로 참전한 막스 베크만(1884~1950)의 <밤> <채소를 들고 있는 예술가들>, 1937년 독일의 공습으로 빚어진 게르니카의 참상을 고발한 피카소의 <게르니카>, 게르니카에 앞서 프랑스군의 마드리드 주민학살을 그린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도 촛불이 등장한다. (고야 그림 속 조명은 촛불이 아니라 군용램프다.)
반 혼트호르스트 <즐거운 친구들>(1619~20)
스할켄 <등불 아래 고대 조각상을 바라보는 젊은 남녀>(1680~85)
책은 아예 뿌리를 캐는데, 거슬러 오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밤 그림’으로 유명한 17세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화파의 반 혼트호르스트, 테르 브뤼헨, 그리고 한 세기를 거슬러 16세기 레이덴 화파의 렘브란트, 헤리트 도우, 호트프리트 스할켄 등에 이른다. 이들의 개신교적 훈계성 그림에는 도시화에 따른 풍속 변화상이 짙게 배어 있다. 한 발짝 더 디디면 당연히 가톨릭 종교화로 수렴된다. 지은이가 확인한 첫 촛불 그림은 헤르트헨 토트 신트 얀스(1465~1495)의 <거룩한 밤의 예수 탄생>.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 자체가 촛불이다. 그 이전엔 어둠은 악의 표징이어서 아예 그림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루벤스 <촛불을 들고 있는 노인과 소년>(1616~17)
통상 촛불 그림 효시로 카라바조(1573~1610)를 꼽는데, 지은이는 그 이전 르네상스와 롬바르디아 화파, 베네치아 매너리스트의 작업에서 출현했다는 점을 밝힌다. 굿을 보려면 계면떡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일이다. 책을 펴낸 아르테스 시각문화연구소는 제자들을 위해 지은이가 세운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그림 아르테스 시각문화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