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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누가 히틀러 집권에 꽃길을 깔아줬나?

등록 2022-04-22 04:59수정 2022-04-22 14:11

‘듣보잡’ 선동꾼이 희대의 독재자로 등판한 데는
용렬하고 시야 좁고 제 꾀에 빠진 정치인들
무엇보다 그들을 권좌로 밀어올린 국민들이 있었다
히틀러.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히틀러.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l 눌와 l 1만9800원

“베를린의 쌀쌀한 겨울저녁, 9시가 조금 지나자 무슨 일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의 서두는 소설스럽다. 1933년 2월27일 바이마르공화국 국회의사당에 불이 났다. 헤르만 괴링 무임소장관, 아돌프 히틀러 총리, 프란츠 폰 파펜 부총리, 선전 전문가 요제프 괴벨스, 비밀경찰 총수 루돌프 딜스가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타오르는 불빛이 히틀러의 얼굴을 조명처럼 비춘다. “이제 자비란 없다. 공산당을 보는 대로 쏴 죽이자.”

지은이는 그날을 ‘바이마르공화국 마지막 밤, 독일 민주주의 마지막 밤’이라고 썼다.

히틀러 내각은 화재 다음날 ‘국민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대통령 긴급명령’, 이른바 ‘국회의사당 화재 법령’을 의결하고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서명을 얻어냈다. 화재가 공산주의자 폭동의 전조라는 히틀러의 주장에 따라 헌법이 보장한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정지됐다. 정치적으로 위협이 된다면 누구든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게 됐다.

3월23일, 파괴된 국회의사당 근처 크롤 오페라하우스에서 무장한 돌격대와 친위대에 둘러싸인 채 의원들은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히틀러 정부에 4년 동안 입법권을 준다는 내용으로 바이마르공화국의 모체인 바이마르헌법이 무력화됐다. 그리고 훗날 ‘장검의 밤’으로 명명된 1934년 6월30일. 파펜이 가택연금 된 상태에서 그의 언론담당 비서 보제, 부총리 집무실의 저항운동 중심인물인 융이 살해됐다. 전임 총리 슐라이허 역시 일곱 발의 총을 맞았다.

전작 <국회의사당 불태우기>에서 국회 화재가 나치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된 방화임을 밝힌 지은이는 관심사를 넓혀 1930년대 초 바이마르공화국의 몰락과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돌아보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체제인가를 환기시킨다. 우리나라도 참고로 삼을 만큼 최첨단 현대 민주주의의 전형을 구체화한 바이마르헌법. 비례대표 선거, 남녀평등을 포함해 인권과 자유를 보호하는 조항을 빈틈없이 갖추었고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화국에서 어떻게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가 탄생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1933년 1월30일 히틀러는 힌덴부르크 대통령한테서 총리 임명장을 받았다. 이날 저녁 베를린에서는 대규모 축하 횃불행진이 벌어졌다. 행진에는 나치 돌격대, 친위대 외에 철모단 같은 다른 우익단체 대표들도 합류했다. 새 정부는 연립정부였기 때문이다. 나치에겐 1차 세계대전 테이프를 끊은 ‘영광의 1914년 8월’로 돌아간 날이었고, 힌덴부르크에겐 분열된 독일 우파가 통합된 날이었다.

힌덴부르크는 왜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을까. 1차대전 때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승리해 러시아로부터 동프로이센을 지켜낸 노장군, 두 번째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돼 재선까지 한 그에게 일병 출신의 히틀러는 ‘듣보잡’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여기엔 힌덴부르크가 실제로는 ‘물통령’이었다는 사실과 바이마르헌법이 가진 치명적인 단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힌덴부르크를 국민영웅으로 만든 타넨베르크 승전은 루덴도르프 참모장, 호프만 중령 등 부하들한테 중요한 결정을 떠넘긴 덕분이었다. 대통령이 돼서도 중요한 결정은 다른 사람에게 넘김으로써 책임을 벗어났다. 재선에 성공해서는 히틀러와 결선투표까지 하게 만들었다며 선거운동에 매진한 브뤼닝 총리를 비난했다. 독일군 총사령관으로 1918년 휴전협정을 맺을 때 ‘국내세력에 등을 찔렸다’는 배후중상설을 퍼뜨린 당사자였다. 패전의 결과로 빚어진 11월혁명을 패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어리석은 자기 아들과 숨은 조력자 슐라이허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던 용렬한 인물이다.

지은이는 힌덴부르크가 탄핵과 기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히틀러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본다. 그 무렵 언론, 정당 지도부, 프로이센 주총리 등 각계에서 힌덴부르크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적법성과 관련해 공격을 퍼부었다. 툭하면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해온 그의 행태에 대한 불만이 쌓여 폭발지경에 이른 것. 바이마르헌법은 제42조에 독일 국민이 해를 입지 않도록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법 조항이 힌덴부르크에게는 정권 안정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아무리 좋은 법도 쓰기 나름이다.

지은이는 히틀러의 부상에 기여한 인물로 슐라이허를 꼽는다.

힌덴부르크의 막후 실력자였던 그가 전면에 나서기로 한다. 브뤼닝과 파펜을 잇따라 총리로 내세웠지만 기대에 못 미치거나 어긋났기 때문이다. 힌덴부르크와 함께 체질적인 우파인 그는 좌파인 사회민주당에 의존하는 브뤼닝이 못마땅했다. 자신이 내심 이용하고 싶었던 나치 돌격대에 금지조처를 내리자 결국 브뤼닝을 내치고 꼭두각시 삼을 요량으로 총리감이 못 되는 파펜을 발탁했다. 내각까지 사전에 짜줬다. 그는 파펜을 이용해 좌파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프로이센 주정부를 전복시킨다. 연립정부 파트너로 점찍은 우파 국가인민당 대표 후겐베르크가 내세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독일 영토와 인구의 5분의 3을 차지하여 제2의 독일이라 불리는 프로이센에서 벌어진 사태를 두고 지은이는 독일 민주주의의 사망선고라고 평가한다. 슐라이허는 이렇게 좌파를 정리하고 마침내 1932년 12월 총리가 되는데, 얕잡아 봤던 히틀러한테 뒤통수를 맞아 2개월 단명으로 그친다. 자기 꾀에 넘어간 꼴.

지은이는 히틀러가 자력으로 집권했다기보다 용렬한 우파 정치인들과 시대상황이 꽃길을 깔아줬다고 본다. 아무러면 그런 정치인에게 권력을 쥐여준 독일 국민들만 하겠나. 남의 나라 옛날이야기처럼 읽히지 않음은 왜일까.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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