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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당신의 생각에 끼어있는 잡음, 어떻게 줄일까

등록 2022-04-29 05:00수정 2022-04-29 10:16

[한겨레BOOK]
행동경제학 분야 새 화제작
인적 판단 속 편향과 잡음 존재
숨겨져 눈에 띄지 않는 잡음
규칙·알고리즘 등으로 대응
사진 제이콥 커크가르드.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진 제이콥 커크가르드.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노이즈: 생각의 잡음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대니얼 카너먼·올리비에 시보니·캐스 선스타인 지음, 장진영 옮김 l 김영사 l 2만5000원

자대배치 직후 야간사격 대회에 차출됐다. 훈련소에서 받은 ‘특등사수’ 점수 탓이다. 겨울 저녁 7시쯤 20m(50m인지도 모름) 거리의 표적. 어쩌다 맞힌 첫 발을 빼고 전부 빗나갔다. 특등사수? 웃기고 있네. 첫 야간사격. 방법도 요령도 모르는 졸병은 그날 밤늦도록 뺑뺑이를 돌았다.

<노이즈>는 40여년 전 군복무 시절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책은 사격 후 표적지 얘기로 시작한다. ⓐ중앙에 탄착군 ⓑ구석에 탄착군 ⓒ넓게 탄착 분산 ⓓ좁게 탄착 분산. 표적을 정확히 맞히는 게 이상적일 때, ⓐ는 완벽 ⓑ는 편향 ⓒ는 잡음(이하 노이즈) ⓓ는 편향+노이즈라고 이름 짓는다. 책의 주제가 바로 ‘노이즈’란다. 내 표적지는 넓게 보아 ⓒ였을 터. 지은이는 뺑뺑이 대신 두툼한 책을 안긴 셈이다.

물론 책은 사격 이야기가 아니다. 판단에서 발생하는 노이즈 이야기다. 개인 삶이 연속된 판단으로 이뤄지고 법인(기업, 기관) 또는 나라 역시 그러한데, 순간의 판단에 미래가 좌우되는 점에서 그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완벽한 판단을 기하려면? 편향을 바로잡으려면? 이런, 조금은 내용이 짐작되는 주제가 아니라 노이즈라니…. 주변에 하도 많은지라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완벽으로 가는 수업료 정도로 치부하고 마는, 그래서 메커니즘이 불투명한 것을 두고 세 명의 석학이 달라붙었다. 행동경제학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전략적 의사결정 분야 권위자 올리비에 시보니, 정책 전문가이자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 전반부는 노이즈란 무엇인가, 후반부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할까이다. 초반에 일상 경험에서 뽑아낸 것으로써 개념을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쌓아가는 터라 자칫 방심하면 길을 잃는다. 하지만 미국 실용서가 그렇듯이 사례를 중심으로 담론이 전개되고 앞뒤로 요약을 붙여 읽기 편하다.

편향과 잡음에 따른 결과. 정확한 A팀에 견줘 B팀은 편향의 결과를, C팀은 잡음의 결과를 보여준다. D팀은 편향과 잡음이 모두 있는 결과다. 그림 김영사 제공
편향과 잡음에 따른 결과. 정확한 A팀에 견줘 B팀은 편향의 결과를, C팀은 잡음의 결과를 보여준다. D팀은 편향과 잡음이 모두 있는 결과다. 그림 김영사 제공

미국의 한 사례연구. 양형위원회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범죄의 무거운 정도를 순차적으로 배열 가능한 16개의 가상사건을 설계하여 판사 208명한테 형량을 물었다. 이상적이라면 사건별로 판사들의 양형은 동일해야 하고 사건의 중한 정도를 따라 양형이 달라야 한다. 웬걸. 판사들 사이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내린 형량에서 차이를 보였다(‘제도 노이즈’). 각각의 판사가 개별 사건에 내린 형량은 사건별 형량 평균치와 차이를 보였으며(‘수준 노이즈’), 특정 사건에 대한 판사들의 양형은 일치하지 않았다(‘패턴 노이즈’). 시간을 달리해 사건을 다시 보여주었을 때 양형이 달라지는 경우(‘상황 노이즈’)도 관찰됐다. 지은이는 노이즈 사이의 관계를 수식화했다.

오류²=편향²+제도 노이즈²
제도 노이즈²=수준 노이즈²+패턴 노이즈²
패턴 노이즈²=안정적인 패턴 노이즈²+상황 노이즈²

이를 줄이면 오류²=편향²+수준 노이즈²+상황 노이즈²+안정적인 패턴 노이즈²이 된다. 그러니까 오류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면 편향 > 수준 노이즈 > 안정적 패턴 노이즈 > 상황 노이즈 순이다. 제곱근으로 구성된 만큼 편차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노이즈는 판단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발생한다. 법원 판결뿐 아니라 의사의 진단, 경기 예측, 범죄 수사, 채용 면접, 인사 고과 등등. 그것도 아주 많이 다양한 형태로. 예컨대 지문감식을 통한 범인의 특정에도 600분의 1의 노이즈가 있다. ‘1인 1지문’ 믿음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그런데 노이즈는 대개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왜냐면 사람들은 인과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증권시장 기사를 보라. 지수변동 추이를 밝히고 그 원인으로 뭔가를 반드시 적시하는데, 그것이 맞는지는 차치하고, 지수변동에 잠재하는 무수한 변수가 없었던 것으로 치부된다.

판단에서 노이즈를 줄일 방법은 무엇인가. 노이즈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첫 단추다.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련하고 똑똑한 사람을 판단자로 하라. 노이즈가 해결해야 할 정도의 크기라면 판단을 규칙이나 알고리즘으로 대체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대체하는 수준으로 판단 방식을 합리화하라. 예컨대 가이드라인 도입. 엉성해 보여도 ‘그때그때 달라요’보다 훨씬 낫다. 외부 관점에 기초한 잣대를 사용하라. 선입견을 배제하고 통계적으로 사고하라. 그러자면 다수 항목으로 나누어 독립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통계와 데이터를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여러 독립적 판단을 집계하라. 판단 100개를 모아 평균을 구하면 노이즈 90%를 줄일 수 있다. 일종의 군중의 지혜 활용하기다. 소수 정예 판단자 것만을 평균 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근무평가의 경우 다면평가는 4분의 3이 노이즈다. 절대평가보다 상대평가가 낫다. 각각의 가치에 평점을 매기기보다 줄을 세워 등급을 매기는 편이 낫다.

노이즈 대부분은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이 만든 제도에서 비롯된다. 지은이는 곳곳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판단 전문가들이 자리를 뺏길까, 호의적이지 않아서 할 수는 없다며 입맛을 쩍쩍 다시는 모습이 역력하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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