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문학사의 라이벌
정출헌·고미숙·조현설·김풍기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1000원
정출헌·고미숙·조현설·김풍기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1만1000원
잠깐독서
‘개혁군주’ 정조가 추진한 일련의 조처 가운데에서도 ‘문체반정(文體反正)’은 그의 시대적 한계를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일이었다. 중국에서 들어온 명청소품(明淸小品)과 패관잡서의 영향으로 타락한 사대부 계층의 문풍을 바로잡고 고문(古文)을 부흥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 사건의 정점에서 정조는 문풍을 타락시킨 주범으로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를 지목했다. 이 무렵 20대 후반의 젊은 관료였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패관잡서를 비난하며 책자를 모두 모아 불사르고 중국에서 이를 사들여오는 자를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취지의 ‘문체책(文體策)’을 지어 올린다. 연암과 다산을 동류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겠다. 고전문학자 고미숙씨는 “‘중세 체제의 모순에 대해 비판했고, 조선의 주체성을 자각했으며, 근대 리얼리즘의 맹아를 선취했다’는 식으로” 두 사람을 한데 묶어 평가하는 견해는 ‘근대, 민족, 문학’이라는 트라이앵글이 작동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고씨는 두 사람의 자리를 ‘유쾌한 노마디즘’ 대 ‘치열한 앙가주망’으로 명쾌하게 나누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중세의 외부’를 사유하고 실천했으며, 또 전혀 상이한 방식으로 근대와 접속”한 그들의 삶과 세계를 서술한다. 두 사람이 40년 남짓한 시간을 같은 시간대에 살았음에도 그들이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들 사이를 흐른 긴장의 기류를 잘 보여준다. 고미숙씨가 동료 고전문학자 정출헌·조현설·김풍기씨와 함께 쓴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연암과 다산을 비롯해 월명사-최치원, 김부식-일연, 이인로-이규보, 정도전-권근, 서거정-김시습, 김만중-조성기, 이옥-김려, 신재효-안민영 등 아홉 쌍의 고전문학 작가들을 대비시켜 가며 그들의 작품 세계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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