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 평론집 <카이로스의 문학>
<노동해방문학>의 이론가였던 조정환(50)씨가 15년 만의 새 평론집 <카이로스의 문학>(갈무리)을 펴냈다.
조정환씨는 1989년에 창간된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노동해방문학론을 설파하면서 당시 김명인, 백진기씨 등과 더불어 민족문학 주체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90년 말 국가보안법에 의해 수배령이 내려졌고, <노동해방문학>의 동지였던 박노해씨 등이 체포된 뒤에도 기약 없는 수배생활을 계속했다. 1999년 말까지 이어진 잠수의 세월 동안 그는 ‘이원영’이라는 이름으로 10여 권의 번역서를 펴내는 등 이론적 모색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배가 해제된 뒤의 그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질 들뢰즈를 천착하면서 노동해방문학론을 21세기적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카이로스의 문학>은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제목에 쓰인 ‘카이로스’란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 ‘크로노스’에 대비되는 말이다. 크로노스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가리키지만, 크로노스가 단순히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연속적 흐름으로서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시간의 의미 있는 순간 또는 사건으로서의 시간에 해당한다. 앞선 두 평론집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1989)과 <노동해방문학의 논리>(1990)가 사회주의적 신념의 직접적 투영이었다면, 새 책에서 조정환씨가 강조하는 것은 뜻밖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이라는 것이다: “삶은 절대적으로 다양하면서도 유일한 실재성이며 삶 외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삶이 자본에 포섭되면서 삶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현장으로 된다.” 그는 아예 ‘삶문학’이라는 용어를 창출하는데, 노동해방문학을 대신하는 것으로서의 삶문학이란 왕년의 치열했던 이론가 조정환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올 법도 하다.
10여 년의 편차를 두고 쓰여진 글들의 헐거운 짜임새를 의식해서인지 조씨는 ‘카이로스의 시간과 삶문학’이라는 장문의 총론을 새로 써서 책 앞머리에 배치했다. 이 글에서 그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문학권력 논쟁과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문학 이론을 전개한다. 그에 따르면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은 모더니즘의 승리로 끝났다기보다 리얼리즘의 자결로 끝났다.” 그는 “최원식의 (리얼리즘-모더니즘)회통론을 통해 <창작과 비평>이 거추장스런 리얼리즘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린 것은 이미 손에 거머쥔 문학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합리적 수순이었던 것으로” 본다.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이라는 ‘거짓’ 대립구도 대신 그가 내세우는 것이 바로 ‘삶문학’이다. 삶문학이라는 용어로써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삶의 주체인 다중의 경험과 감각의 ‘표현’이다. 근대를 창출해 냈으며 또한 극복할 힘을 내장한 다중에 대한 그의 신뢰는 두텁기 짝이 없다. “자신이 생산한 체제 속에서 살면서 그것에 저항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단단한 것을 녹여 내리는 다중의 힘이며 다중의 영원성의 삶이 발휘하는 발생사적 힘”(87쪽)이라고 그가 말할 때 다중에 대한 그의 신뢰는 예전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신뢰를 대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당파적 당위가 다중의 잠재력에 대한 낙관적 믿음으로 몸을 바꾸었달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낡고 좁은 틀에 매이지 않는, 표현으로서의 통일을 그는 주창하는데, 그 점은 앞으로 구체적인 작품을 대상으로 한 실제비평으로써 그 실효성을 입증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돌아온 이론가’ 조정환씨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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