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산문집 <인생은 깊어간다>
소설가 구효서(49)씨가 두 번째 산문집 <인생은 깊어간다>(마음산책)를 내놓았다. 제목으로 보아 이 책은 2000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낸 첫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에 이어지는 일종의 시리즈물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앞의 책이 주변의 소소한 사물들을 매재(媒材) 삼아 인생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책은 작가가 스스로 ‘내 인생의 명장면’으로 꼽은 33개의 일화를 들려주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명장면’이라고 하면 대개 기쁘고 즐거운 일을 떠올리게 되지만, 구효서씨가 이 책에서 안내하는 명장면은 반드시 그렇게 밝고 화려하지만은 않다. 그보다는 슬픔과 설움이 섞여 있는 게 보통이다. 아니,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도 슬픔과 설움이 버무려져 있을 때 그 진가가 더욱 발휘되게 마련이다. 찢어진 고무신을 수선하고 싶어도 그 돈이 없어 허덕대던 극빈의 시절, 땜장이 아저씨의 ‘무료 수선’은 어린 소년의 마음줄을 울린다. 고무신을 지나 그토록 갖고 싶던 운동화가 생겼을 때도 그것은 그가 애지중지하던 누렁이를 내다 판 돈이어야만 했다. 인생이란 그렇게 ‘깊어가는’ 것이다.
수록된 글 가운데 ‘파트너’라는 제목의 글은 짧은 분량 속에 진한 감동과 극적인 반전을 간직하고 있는 수작이다.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한 휴일 오후의 데이트를 소재 삼은 이 글에서 화자와 파트너인 ‘그녀’는 영락없는 연인 사이로 그려진다. 두 사람은 어깨를 감싸 안거나 등을 쓰다듬으며 “사랑해”라는 말을 주고받는 ‘닭살 커플’이다. 그것이 감동적인가? 글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데이트를 마감하며 메모지에 적은 글을 카페 통나무 벽에 붙인다: “여름의 향기와/휴일의 여유로움과/최고의 파트너/어머니와 함께…/1993년 6월 29일.” 어머니 나이 마흔 살에 십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작가가 이 책에서 피력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고 애틋하다. 그 어머니가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떴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그러하다.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아버지,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누이들, 한 조각 콩떡을 놓고 아귀다툼을 했던 고향 동무들…. 가족과 이웃들을 향한 이해의 시선은 세월을 따라 깊어만 간다. 인생이 깊어가는 것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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