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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바쁜 아이들에게 꽃 같은 여유를

등록 2022-07-15 05:00

튤립 호텔

김지안 지음 l 창비(2022)

어린이의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 있구나 싶어진다. 어린이는 날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서 분 단위로 잡힌 일정을 소화한다. 피아노를 치고 태권도를 배우고 줄넘기를 한다. 리코더를 연습하고 숙제를 하고 학원에도 간다. 짬을 내어 친구들과 논다. 길고양이를 구경하고 산책하는 강아지의 이름을 알아낸다. 정말 바쁘다. 다시 어린이처럼 살아보라고 하면 나는 못 할 것 같다.

<튤립 호텔>의 멧밭쥐들도 바쁘다. 가을 들판을 부지런히 오가며 자기들 몸집만 한 튤립 알뿌리를 옮긴다. 꽃의 색깔을 고려해서 정원을 설계하고, 일일이 땅을 파서 알뿌리를 심는다. 추워지기 전에 마쳐야 하니까 쉴 틈이 없다. 겨울에는 간판을 비롯해 개장에 필요한 물품을 만든다. 틈틈이 눈싸움도 한다. 어제와 같은 음식을 먹으며 춥고 긴 겨울을 견디는 것도 멧밭쥐들의 일이다.

“찬 바람이 쌩쌩 불어도 노릇노릇 햇살이 따듯하다면” 봄이 왔다는 신호다. “뽁” “뽁” 튤립의 싹이 올라오자 멧밭쥐들은 노래를 부르며 달려나간다. 낮이면 열심히 튤립을 돌보고 밤이 되면 곯아떨어지는 모습이 하루 힘을 다 쓰고 곤히 잠든 어린이와 닮았다. 튤립 꽃대가 올라오고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를 때 독자의 기대감도 부풀어 오른다. 튤립 호텔은 대체 어떤 곳일까?

문을 활짝 열듯이 책장을 양옆으로 펼치면 호텔 전체 모습이 나타난다. 쾌적한 식당과 깨끗한 수영장, 재미있는 주스 바가 완비된 대형 호텔이다. 꽃송이 하나가 객실 하나. 그러니까 손님들은 겹겹이 벽을 이룬 꽃잎 속에서 자는 것이다. 두껍고 촉촉한 튤립 꽃잎을 떠올리면, 낭창낭창하게 흔들리는 긴 꽃대를 떠올리면, 그 안에서 잘 수 있는 작은 동물이 되고 싶다.

손님들도 대부분 멧밭쥐다. 룸서비스며 한밤의 공연까지 정성을 다하는 직원들 덕분인지, 일행이 있든 없든 손님들은 행복해 보인다. “여기 감자호박국수가 그렇게 생각나더라고.” “당근 통구이 어때?” 같은 즐거운 대화가 넘친다. 게다가 이곳은 꽃이 가득한 호텔이 아닌가. 다들 성실하게 살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조금 사치스러운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만 지을 수 있는 표정들을 하고 있다.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튤립 호텔도 문을 닫는다. 처음부터 튤립 호텔의 시간은 정해져 있던 것이다. 휴가는 그래서 소중하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멧밭쥐들에게도 온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면지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을 놓치면 안 된다.

이 그림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계속 웃고 있었다. 이렇게 조그만 동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협력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애틋하다. 어린이의 생활이 겹쳐 보인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에는 어린이에게 여유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 긴장을 풀고 다음 계절을 준비할 수 있게 다독여주자. 어린이의 수고를 알아주자.

김소영/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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