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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진화의 법칙이 있다면…베끼기, 훔치기, 변형하기

등록 2022-07-29 05:00수정 2022-07-29 09:21

고생물학자의 새로운 진화 강의
“유전자들은 서로의 변형된 사본”

염색체 이동하는 ‘점핑 유전자’ 등
우리가 몰랐던 진화의 메커니즘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시행착오, 표절, 도용으로 가득한 생명 40억 년의 진화사
닐 슈빈 지음, 김명주 옮김 l 부키 l 1만8000원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닐 슈빈의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화석 증거부터 유전자 가위까지, 생명의 진화 과정을 구체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대개 우리는 진화가 어떤 체계나 계통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닐 슈빈에 따르면 진화는 “시행착오, 우연과 필연, 우회, 혁명과 발명”의 과정을 거듭하며 일어났다.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베끼고 훔치고 변형’하면서 이뤄진 대서사시다. 저자는 새의 깃털이 하늘을 날기 위해, 폐는 동물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생물의 몸에 생기는 발명은 그것이 관여하는 대변화를 일으킨 계기가 아니었다”고 명토 박는다. 오히려 큰 변화는 “오래된 기관이 새로운 용도로 전용되면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변화의 시작으로 오래전부터 있었고, 옛것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면서 진화는 탄력을 받은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몸을 만드는 유전자들은 대개 서로의 변형된 사본들”이라는 사실이다. 진화를 거듭하며 인간의 뇌가 커졌는데, 그 이유는 인간 뇌에만 존재하는 ‘NOTCH2NL' 유전자 때문이다. 이 유전자의 원본은 ‘NOTCH’인데, “파리에서부터 영장류까지 모든 동물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만이 NOTCH 유전자를 무한 복제하면서 큰 뇌, 즉 지능을 갖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게놈은 반복과 유전자군 같은 사본들로 가득하고 이런 중복은 발명과 변화의 원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도룡뇽의 사지는 구성 요소를 잃음으로써 진화한다. 이 그림은 진화가 일어나는 동안 서로 이웃하는 뼈들이 어떻게 유합되는지 보여 준다.
도룡뇽의 사지는 구성 요소를 잃음으로써 진화한다. 이 그림은 진화가 일어나는 동안 서로 이웃하는 뼈들이 어떻게 유합되는지 보여 준다.

도룡뇽은 발생을 늦추거나 멈추어 몸의 형태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도룡뇽은 발생을 늦추거나 멈추어 몸의 형태를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일반 파리(왼쪽)와 돌연변이체(오른쪽). 안테나피디아라는 돌연변이체의 이름은 본래 더듬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가 돋아난 데서 유래했다.
일반 파리(왼쪽)와 돌연변이체(오른쪽). 안테나피디아라는 돌연변이체의 이름은 본래 더듬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가 돋아난 데서 유래했다.

이 과정에서 활동하는 것이 ‘점핑 유전자’다. 한 염색체에서 다른 염색체로 이동하며 자가복제가 가능한 전이 요소인 점핑 유전자는 “궁극의 이기적 분자”다. 사본을 만들어 확산하며 게놈 안에 증식하기 때문이다. 게놈 안에서 점핑 유전자와 “나머지 디엔에이(DNA)가 일종의 내전을 벌이”면서 인간은 진화해왔다. 즉 다정한 것보다 이기적인 것이 살아남는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개체들이 합쳐지고 조립되면서 더 크고 복잡한 개체를 이루었다. 저자는 “여러 세포들 사이의, 또는 게놈의 각 영역 간의 이해 충돌을 해소”하면서 몸 안의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며 오늘의 인간이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이기적이면서도 다정한 유전자들의 조합이 바로 우리인 셈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유전자가 복사·중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실수가 있었는데, 진화는 이처럼 ‘변이’라는 시행착오마저 연료로 사용해 자연을 발명해 나갔다. 때로는 자신을 파괴하려고 침입한 “바이러스를 길들여 일을 시킬” 능력까지 선보였다. 저자는 게놈이 “유령이 득시글대는 묘지와 비슷”하다면서 게놈 안에서 “끊임없이 투쟁”이 일어난 결과, “자궁 내막과 같은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진 것은 물론 기억과 인지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주장한다. 베끼고 훔치고 변형을 거듭했지만, 진화 자체가 “불확실한 도박”은 아니었다. 진화의 결과는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세계들 중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자연의 발명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진화에 대한 진부한 통념을 바로잡으며, 진화의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연과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그림 부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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