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운반 유리 상자 ‘워디언 케이스’
의사이자 식물애호가가 발명·보급
플랜테이션 등 제국주의 확장욕 자극
침입종, 환경 문제 일으키며 잊혀져
의사이자 식물애호가가 발명·보급
플랜테이션 등 제국주의 확장욕 자극
침입종, 환경 문제 일으키며 잊혀져

1899년 마다가스카르 현지인인 메리나인들이 워디언 케이스에 담긴 식물을 나니사나 식물 시험소에서 마다가스카르 교외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옮기는 장면. 에밀 프뤼돔 사진. 푸른숲 제공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l 푸른숲 l 2만5000원 “환경에 대한 많은 역사적 기록에서 대체로 물류에 대한 관점은 빠져 있다.” 루크 키오의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는 대륙 간 ‘식물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워디언 케이스의 역사를 다룬다. 큐레이터이자 역사가인 루크 키오는 전시회를 준비하다가 워디언 케이스를 발견하고 그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됐다. 식물이 살아 있는 상태로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게 만든 발명품이 주목받지 못한 데 관심을 가진 그는 전세계에 퍼진 워디언 케이스와 관련된 자료를 살펴 책을 완성했다. 식물을 운반한 상자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현대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식물의 세계적인 이동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마시고 먹고 냄새 맡고 입는 우리의 선택이 식물의 이동으로 변혁을 맞이했다. 이 모든 변화를 목격한 물건이 바로 워디언 케이스였다. 워디언 케이스는 밀폐된 유리 상자다. 충분한 햇빛이 있다면, 식물을 이 상자에 넣은 채로 몇 개월까지도 살아 있는 상태로 운반할 수 있었다. 축축한 흙에 든 식물이 유리를 끼운 밀폐형 상자 안에서 빛을 받는다면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여러 달, 심지어 여러 해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사람은 바로 영국의 외과의사이자 식물 애호가, 박물학자인 너새니얼 백쇼 워드. 1829년, 나방 부화를 관찰하기 위해 밀폐된 유리병에 흙, 마른 잎, 나방의 번데기 등을 넣고 관찰하던 그는 유리 용기 속 고사리와 이끼가 물을 주지 않아도 오래 살아 있음을 관찰하고 식물을 운반하는 밀폐 용기를 만들어 실험을 시작했다. 작동 원리는 온실과 유사하지만, 온실과 달리 이 상자는 크기가 작아 운반할 수 있으며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거의 없다는 압도적인 장점이 있었다. 워디언 케이스가 발명되기 전, 타지의 식물을 가져와 재배하려면 종자를 가져와야 했다. 한국에서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숨겨 온 이야기가 전해지듯이. 그러나 많은 식물의 종자는 수분이 말라버리면 죽었고, 특히 기름이 많거나 열대지방에서 나온 종자일 경우 습한 곳에 보관하면 곰팡이가 피었다. 이제 유리 상자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무엇이든 식물을 운반할 수 있게 되자 제국주의적 욕망이 이에 부응했다. “식물을 운반하려는 욕망에는 항상 제국의 세계적 확장과 경제적 이득이라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1차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항구 다섯곳이 영국과의 교역을 위해 개방되었고,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전쟁 이후 중국과의 무력 개방을 통해 외국인들은 훨씬 자유롭게 교역을 시작했다. 영국 왕립 원예학회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식물 채집가를 중국으로 보냈다. 거의 3년간의 여정 끝에 그는 워디언 케이스 18개를 배에 싣고 영국으로 귀환했다. 이 여행의 수확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중국의 차 생산 과정이었다. 차를 식민지에서 재배해 중국의 차 독점을 피하고자 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다. 차나무 묘목을 새로운 플랜테이션 지역으로 옮기는 데 워디언 케이스가 역할을 했다. 제국이 팽창하면서 말라리아 예방책으로 쓰인 기나나무의 중요성도 커졌다. 열대 지역을 여행하는 탐험가와 말라리아 유행 지역에서 근무하는 군인, 무역상, 정부 관리는 기나나무 몸통의 껍질 가루에서 채취한 퀴닌을 섭취하게 되어 있었다. 기나나무 원산지는 남미 지역이었지만 영국 및 네덜란드 정부는 기나나무를 자국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생물학 첩보전이었다고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영국이 식민지에서 차 재배에 열중했다면, 네덜란드는 1930년경이 되면 퀴닌 시장의 거의 90%를 점유했다.

1909년 식민지 시험용 식물원의 정원사들이 워디언 케이스 운반을 준비하고 있다. 푸른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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