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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두 번의 문화단절기 헌책방이 다리역…책방 주인은 좋은 책 권하는 컨설턴트

등록 2006-03-02 20:28수정 2006-03-03 16:07


헌책방 순례/ 할

복개를 겨우 면한 신림천이 콘크리트 옹벽에 갇혀 바닥을 보이는 반면 양쪽 찻길에 흐르는 차량과 물류의 용용함은 냇물을 압도한다. 신림천이 이처럼 졸아든 것은 관악산 기슭에 서울대학교가 틀어앉아 물을 켜고 대학촌이 작은 물길들을 흩어 없앤 까닭이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오며 물길이 넓어지듯이 언덕을 긁어내린 길이 천변길을 만나 넓어지며 주거지는 상업지로 색깔을 달리한다. 그 길목에 술집과 찻집이 우선 착점하고 그 사이를 기타 다른 것들이 메우는 모양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당장 눈에 띄지 않으나 좌고우면 하면 금세 존재를 드러내는 게 헌책방이고 신림9동에서는 그 이름이 ‘할’(016-9337-0006)이다. 내어붙인 차양 아래 책꽂이의 책들이 막 달아낸 조화처럼 선명하다. 새 헌책을 툭툭 좌판에 던지는 사내의 완강함과 겹쳐 ‘할’은 쉽게 속을 내줄 것 같지 않다. 세로로 긴 사각형 책벽 가운데 두 줄의 책꽂이를 두었고 높은 공간 위쪽을 툭 잘라 다락을 들였다.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허투루 빼어들어 뒤적거리기 민망하고, 눈높이를 중심으로 완급을 두어 손님의 시간차까지 계산한 흔적이 뚜렷하다. ‘잘 빚은 항아리’ 같달까.

“우리 출판문화는 두 차례 커다란 단절을 경험했습니다. 1970년대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의 전환과 80년대 말 사회주의 동구권의 붕괴가 그것입니다.” 70, 80년대 ‘~읍니다’ 체로 표기된 책들과 세로조판의 책들이 그 안에 담긴 콘텐츠와 무관하게 마구 버려졌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허둥댔고 그들이 낸 도서들 역시 서재와 도서관에서 마구 쏟아져나왔다. 그들이 버린 책은 분명 ‘종이와 활자’일 테지만, 시대를 대표하고 시대를 고민하는 지성의 집약체였다.

인터뷰를 사양하겠다던 주인 최불초(46)씨는 책방 이야기를 하자는 타협안을 내자 헌책방 문화론을 도도하게 풀어냈다. “예컨대 삼중당문고, 신구문화사판 세계전후문학전집에는 지금도 살려 쓸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중역이어서 어설픈 느낌은 있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출판문화의 바탕이라는 거죠. <들어라 양키들아>가 60년대에 이미 번역돼 소개되었습니다.” 헌책방은 책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 외에 단절된 시대를 잇는 다리 구실을 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래서일까. ‘할’에는 ‘쓰레기’가 없다.

“요즘 인터넷이다, 시디다 해서 백과사전을 사지 않습니다. 부피만 커 공간을 차지한다는 거죠. 그러나 그 두 가지는 지식을 파편화해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지식의 깊은 세계로 가는 길을 막습니다.” 그는 ‘납작세계’에 지친 사람들이 ‘통짜세계’로 돌아오고 있다고 믿는다. 당연히 헌책방이 사양산업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헌책에 대한 생각과 헌책방을 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헌책방에 가면 좋은 책이 있다는 신념을 준다면 승산있는 분야입니다.”

“책방 주인은 전달자를 넘어 컨설팅을 해야 합니다. 손님의 취향을 파악하여 적합한 책을 구해와 권하면 백이면 백 책값 흥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옛 잡지를 모으고 읽는 게 취미다. <다리> <정경문화> 등 종합잡지를 읽다가 요즘은 문학잡지로 무게를 옮겼다. 서지에 대한 지식이 전달자 또는 컨설턴트의 도구인 까닭이다. 헌책방을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 생각도 있다. 경영, 서지, 입지, 유통구조 등 한달 정도면 기본지식은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아직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면 속에 침잠해 진정한 나를 찾고 싶습니다.” 그가 삭발을 하고 “할”을 외치는 까닭이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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