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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정보의 축적·재생산·전달로 이룬 마음의 진화

등록 2022-10-21 05:00수정 2022-10-21 14:19

진화적 관점의 철학자 대니얼 데닛
반세기 연구의 결정판 또는 종합판

유전자 넘어선 문화적 행동방식 ‘밈’
언어·문화의 진화를 모순 없이 설명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 ‘구성 8’.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위키미디어 코먼스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 ‘구성 8’.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위키미디어 코먼스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
무생물에서 마음의 출현까지
대니얼 데닛 지음, 신광복 옮김 l 바다출판사 l 4만8000원

네 사람이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려 한다. 다리가 좁아 한 번에 최대 두 사람만 건널 수 있다. 밤이라 촛불을 밝혀야 하는데, 촛불이 하나뿐이다. 일행 중 A는 건너는 데 1분이 걸리고, B, C, D는 각각 2, 5, 8분이 걸린다. 두 사람이 함께 가면 느린 사람 속도에 맞춰야 한다. 일행이 15분 안에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의 지은이가 머리에서 소개한,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퍼즐이다. ‘가망이 없으니 아예 생각도 말자’고 하지 말고 풀어보시라. 만일 ‘커닝’ 없이 답을 얻었다면 이 책을 읽을 만한 상상력의 소유자다. 책은 ‘박테리아의 단순한 움직임만 있던 세상에서 어떻게 천재 작곡가 바흐와 같은 인간의 마음이 탄생했을까’라는 빅 퍼즐 풀이다. 반은 철학적이고, 반은 과학적이다.

지은이는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함께 <신 없음의 과학>이란 책이 대표적인 현대 무신론 수호자로 꼽은 대니얼 데닛이다. 50여년 동안 철학과 과학, 이론과 실험,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20여권의 책과 수백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의식, 인공지능, 자유의지, 진화, 종교 등 다양한 철학적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한국에도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주문을 깨다> 등으로 친숙한 이름이다.

이번 책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통찰을 집요하게 확장한 것으로 자신의 저서 중 자유의지와 종교를 다룬 책을 뺀 나머지 책들의 고갱이를 모은 종합판이다. 단백질, 뉴런, 디엔에이(DNA)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하는 마당에 인간의 마음을 신비, 또는 신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게 말이 되겠느냐는 도발과 그 말을 뱉은 학자로서 책임감이 활자 밑에 둔중하게 깔렸다.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 라이벌이 없을 만큼, 엄청난 상상력과 창조력을 갖게 되었나. 지은이는 “덤불과 진창을 헤치고 아주 흡족한 설명에 이르는 길을 찾았다”면서 장장 680쪽에 걸쳐 유장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산허리를 감아 돌며 차츰 고도를 높이는 루프 철도와 같은 담론 경로를 따르면 어느 순간 뇌 한쪽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은 느낌이 온다.

17세기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출발선이다. 그는 육체와 달리 인간의 마음(정신)은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 제2종의 물질로 이뤄졌다는 논리를 펼쳐 후대인들의 사고를 이원론의 틀 속에 가둔 원흉이다. 데카르트는 <르 몽드>라는 자신만만한 제목의 책에서 ‘모든 것의 이론’을 제시하지만 이론 대부분이 틀렸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원론 역시 별 볼 일 없는 것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여하튼 그것은 ‘데카르트의 상처’ ‘데카르트의 중력’이라 일컬을 만큼 사람들의 사고를 옭아매는데, 그 주박을 푸는 길을 연 인물로 찰스 다윈과 앨런 튜링을 꼽는다. 다윈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즉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방식의 창조론으로써 신(위대한 설계자)에 의한 내리꽂기식 창조론을 뒤집어엎었고, 튜링은 기계적 시행을 통해 ‘if-then’ 명령어를 따름으로써 산수 계산을 완벽하게 해내는 ‘마음 없는 기계’(혹은 기계적인 마음)를 만드는 게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탁월함과 이해력은 이해력 없는 능력으로부터 발생하고 그 이해력 없는 능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층 더 능력 있는 체계로 합성된다. 지은이를 ‘이해력 없는 능력’에 대한 확신에 이르게 한 또 한 명의 인물로 ‘맨해튼 프로젝트’ 총책임자 레슬리 그로브스가 있다. 프로젝트 절정기 13만명에 이르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는 인력을 부려 핵폭탄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워밍업.

E=mc². 그거, 우리가 몰라도 불안해하지 않는 것은 전문가들은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E=mc²처럼 기호로 이뤄진 언어 덕분에 인간의 지능이 향상되고 고도의 문화를 이루게 되었다는 논증으로 훅 비약한다. 다시 말해 유전적 본능에 근거하지 않은 행동방식, 즉 밈(meme, mimene(모방)+gene(유전자))으로 구성된 언어를 공유함으로써 정보의 축적, 재생산, 전달이 가능해 개별적 지능은 물론 문화의 비약이 이뤄졌다는 것. 다윈주의에 대한 다윈주의인 셈인데, 급작스러운 고도 높임에 현기증 날 정도다. 그가 가장 공들인 부분으로, ‘밈학(memetics)’이라 일컬을 정도다. 언어와 문화의 진화를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지은이가 책 모두에서 ‘덤불과 진창을 헤치고 찾아냈다’고 흡족했던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뇌는 밈을 다루고 보호하고 번식을 돕도록 ‘선택’되었다. 뇌는 뉴런 덩어리인데, 그 가운데 방추뉴런이라는 뉴런은 사람을 비롯해 유인원, 코끼리, 고래 등 뇌가 크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한테서만 발견되는 특이형이다. 자기감시, 의사결정,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련된 뇌의 영역에 분포된 것으로 미루어 최근에 이뤄진 진화와 관련된 것으로 추론한다. 다만 동물의 밈은 재생산이 제한된 반면, 호모 사피엔스의 밈, 즉 언어는 구르는 눈덩이처럼 축적물을 확 불린다.

인간 마음의 진화를 연구해온 철학자 대니얼 데닛.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 마음의 진화를 연구해온 철학자 대니얼 데닛. 위키미디어 코먼스

대략 책의 줄거리와 서술 방식은 이렇게 요약된다. 워낙 테마가 무겁고, 흠잡을 게 없나 쌍심지 켠 자들이 많은지라 설명이라기보다 논증적이다. 독자가 잘 따라오게 하려고, 얘기를 하다가 불가불 뒤로 돌아가 한 단계 수준을 높여 재론하는 사례가 많아 두꺼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노학자 특유의 말 많음도 눈에 띄는데, 위트가 넘치는데다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깐깐한 논리 판에 숨구멍 구실을 한다. 지은이가 ‘Ba’ 두운을 포기할 수 없어 붙였다는 책의 원제목 ‘From Bacteria to Bach and Back’도 내내 긴장을 유지하는 끈이 된다.

자! 퍼즐은 풀었는가. 못 풀었다고 주눅 들 거 없다. 사실 나는 못 풀었다. 책 내용을 다 이해했냐고? 그럴 리가!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완전하게 이해하면 되지, 뭐….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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