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어드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l 21세기북스 l 4만2000원
원제는 ‘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 Western(서구의), Educated(교육받은), Industrialized(산업화한), Rich(부유한), Democratic(민주적인) 등 형용사의 첫 글자를 조합해서 만든 ‘위어드’(WEIRD)의 최상급 표현을 썼다. 직역하면 ‘세상에서 가장 굉장한 사람들’.
‘현대인 중 잘 나가는 부류’로 이해될 법한 ‘위어드’는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지은이가 미는 ‘위어드’를 표제 삼고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이란 부제를 덧댔다.
지은이가 ‘위어디스트’(WEIRDest)로 꼽은 나라는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뉴질랜드, 독일,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프랑스다. 서북부 유럽국가와 그들이 이주해 만든 나라들. 책의 주제는 이 나라 사람들이 잘 나가는 이유(앞에 든 다섯개 형용사가 그거다)와 그 연원. 인류학, 심리학, 경제학, 진화생물학 등의 최신 연구를 총동원해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모두 포함)가 일부일처만 허용, 친인척 결혼 금지, 중매결혼 금지, 독립 거주, 유언에 따른 상속 등 ‘결혼 가족 강령’을 강제함으로써 친족체제를 해체하고 사람들을 땅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도시, 길드, 대학, 사업체의 결성과 상호경쟁을 견인하여 근대 사회의 문을 열었고 그게 지금까지 주~욱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길~게 펼쳐놓았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깁더판쯤 되겠다.
지은이가 ‘위어디스트’(WEIRDest)로 꼽은 나라는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뉴질랜드, 독일,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프랑스다. 원저의 표지 이미지 갈무리.
새로울 게 없는 주장이 새삼스러운 것은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는 점. 예컨대 유럽 각지의 주교구 896곳이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 442개 지역에 대해 교회에 노출된 평균기간을 계산해 지도에 표시해 보니 노출 기간이 긴 지역이 대체로 현재의 ‘위어디스트’ 국가와 일치한다. 기독교가 금하는 4촌간 결혼 비율과 심리적 성향과 상관관계를 조사해보니, 4촌간 결혼 비율이 높은 나라(책에서 든 예는 튀르키예) 사람들은 순응과 복종 성향이 높고, 개인주의와 독립적 성향이 낮으며, 비개인적 신뢰와 공정성의 수준이 낮다고 한다.
기독교가 미는 일부일처의 장점에 대한 논거도 ‘학~실’(확실)하다. 일부다처제에서는 상위 20%가 부인 여럿, 중위 40%가 부인 하나, 하위 40%가 ‘잉여남성’이라며, 잉여남성은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수치가 높아 폭력, 도박, 약물 중독에 쉽게 노출된다고 한다. 일부일처제에서는 잉여남성이 없으니(진짜?) 사회구성원 모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 전전두 피질에 더 많은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써 자기규제와 극기심이 높은 사회를 구현한다.
몇몇 발견하는 재미. 런던 중앙형사법원(올드 베일리)에 1748년부터 1803년까지 사건 기록이 남아 있다. 범죄 당시 증인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진술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재구할 수 있단다. 영어 ‘sister-in-law’(형 또는 동생의 아내)는 교회법 이후 만들어진 단어로 형사취수를 금하는 조처가 반영돼 있다. 교회는 입양, 일부다처, 재혼을 제한해 혈족의 절멸을 부르고, 부자가 교회를 통해 자선을 하면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는 설로써 막대한 부를 쌓았다.
지은이가 애써 눈 감은 게 있다. ‘굉장한’ 나라들이 굉장해진 데는 남반구를 식민 착취해서이고,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