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농업재편정책으로는 더이상 ‘세대를 이어’ 농업경영을 이어갈 사람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산업화된 농업을 떠받칠 상층농이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2월17일 서울 광화문 열린광장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한 농민 부자의 모습.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해방∼개방 농업 60살 ‘깊은 주름살’
봄을 가장 반기는 이는 농사짓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봄을 반기는 농민은 거의 없다. 지난 겨울까지도 언론을 달구었던 농업 문제는 벌써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내일을 여는 역사>가 봄호에서 ‘한국의 농업과 농민을 위한 변론’을 주제로 특집 논문을 모았다. 해방 이후 한국 농업 60년의 구조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폈다. 그 60년을 거칠게 요약하면, 농민 자치기구를 해체시킨 국가가 통제권을 강화한 뒤, 이 권력을 농민층 해체·분해에 사용하고, 결국 국가가 앞장서 농민을 개방경제의 첫 희생양으로 삼은 시간이다. 착취로 출발한 한국 농업
소득보상 정채 건너뛰고
세계화 정글 내몰려
“3자 합의기구로 회생시도를”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의 농업정책을 크게 4단계로 구분했다. △농업착취정책(자본주의 이륙기) △농업발전정책(자본주의 성장기) △소득보상적 농업보호정책(자본주의 성숙기) △시장지향적 농업자립정책(자본주의 정체기) 등이다. 정부가 전범으로 삼고 있는 선진국 농업은 이 4단계를 거쳐 시장지향적 농업자립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장 교수는 “한국 농업은 농업착취정책에서 출발해 두 단계를 건너 뛰고 곧바로 시장지향적 농업자립정책 단계로 이행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뱁새가 황새를 좇는 형국인데,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장 교수는 “생략됐던 소득보상적 농업보호정책부터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화의 파고가 이미 숙명적인 것이라면, 뒤늦게라도 선진국형 농업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까. 이 분야의 권위자인 박진도 충남대 교수는 부정적이다. 박 교수는 농촌의 ‘양극화’가 피할 수 없는 한 과정임을 수긍한다. 그러나 “선진국 농업의 양극분화가 농업을 산업으로 확립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 한국에서는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해체하면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상층농을 집중 지원해 농업의 활로를 찾겠다는 정부의 접근 방식은 그래서 치명적 파국을 예고하는 것이다. 양극분화의 결과 선진국의 상층농은 ‘기업적 소농경영’의 틀을 굳혔다. 이들 나라에선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한국 상층농은 여전히 전통적 소농경영을 유지하고 있고, 이 가운데 세대를 이어 농업경영을 지속할 농가는 없다.” 이 지경이 되도록 농민들은 무얼 했을까.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과 허은 수원대 강사는 한국 농민운동의 궤적을 중심으로 이 대목을 짚었다. 반공정부, 군사정부, 민간정부를 통틀어 한국 정부는 농민의 저항적 성격을 와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특히 허은 강사는 “해방 정국에서 각 읍과 군 단위로 농민들의 자치조직인 건국준비위원회가 수립되고 이들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 농민조합이 결성됐으며, 여기에 일제시대부터 농민운동에 몸담았던 인사들이 참여했으나, 이후 (건준이 불법화되고) 식민지배에 동참한 관료와 경찰이 복권되면서 농민들이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적극 대변할 인물을 거의 잃었다”고 분석했다. 좌우대립과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지역 농촌을 기반으로 삼았던 뜻있는 인사들도 모두 사라졌다. 박웅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농업의 근본적 회생을 위한 정부·국회·농민 3자 합의기구”를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싫다는 노동자를 붙잡아 노사정 합의기구에 앉히려는 정부가 이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텐데도, 아직 정부와 국회는 답이 없다. 시키는대로 따르다 힘없이 늙어간 한국 농업의 현실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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