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과정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l 글항아리 l 2만4000원
인류학자인 조문영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가 지난 20여 년간 한국과 중국의 달동네, 공장지대, 슬럼화한 노동자 거주지 등 전형적인 빈민 지대를 현장 연구하여 빈곤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를 들여다보았다. 책 제목을 ‘빈곤 과정’(poverty as process)이라 했거니와, 지은이는 모두가 불평등의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경계 없는 불평등의 시대’이기에 빈곤이 뭔가를 딱 꼬집어 얘기하기보다는 빈곤지대 거주자가 정부 또는 기업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빈곤이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을 앞두고 대상자 신규접수 및 기존 생활 보호자에 대한 재조사가 진행됐다. 예산이 깎이면서 수급 대상자가 199만명(생활보호법 대상자)에서 153만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신림7동(난곡) 사회복지전문요원 김씨가 한시 생활보호대상자를 가정방문했을 때.
남편은 건축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누워 있고 아내는 집 한 켠에서 옷 수선 일을 했다. 김씨는 이들의 처지를 한참 듣고는 수도요금 고지서, 병원 진단서, 전세 계약서 등 새로 준비할 서류 목록을 상세히 알렸다. “참, (남편의) 어머니는 집이 있습니까?” 확인차 가볍게 던진 질문에 “신림6동에요”라는 답이 돌아오자 김씨 안색이 변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지금 법적으로는 부양의무자가 재산이 있을 적에… 재산(3천만원)의 120%면 얼마냐?… 4500만원이 넘으면 안 돼요.” 부부는 당황하며 사정을 호소했다. “어머니 평생소원이 집 가져보는 거라… 노인대책 없이 달랑 집 하난데… 집만 제하면 생활 능력이 없는데….” 김씨 응수는 짧았다. “지금 지침으로는 어려워요.” 수급자들은 인터뷰 과정에 심문에 가까운 조사를 받으며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하고, 담당 공무원이 부양의무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당혹감과 수치심을 털어놨다.
지난 8월 큰비에 의한 침수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빌라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대통령실 제공
형제복지원이나 서산개척단 사례에서 보듯 과거 ‘박멸대상’으로만 봤던 빈곤층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틀 잡은 복지 시스템이 공공부조로 포섭해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은 높이 살 일이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수급자들은 여전히 ‘관료기계’와 자격갱신을 두고 전투 중이다. 폐휴지를 주우면서 소득으로 잡힐까, 가족과 수십 년 만에 연락이 닿아도 부양의무자로 잡힐까 불안하다.
수급 안팎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가족을 중심으로 사는 대중에게 남의 빈곤은 관심 밖이다. 안팎이 접점을 찾을 때가 잠깐 있기는 하다. 죽음이다. 2010년 10월 일용직인 아버지가 부양의무자인 자신 때문에 장애인 아들이 복지 수급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극단선택을 했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반지하 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밀린 공과금을 남기고 죽었다. 그해 8월 심혈관질환을 앓던 수급자가 국민연금공단의 ‘근로능력 있음’ 판정 때문에 청소부 일에 나섰다가 수술부위가 감염돼 숨졌다. 2022년 8월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기습폭우로 집안으로 밀어닥친 빗물에 고립돼 익사했다.
청년 빈곤은 정부와 기업에 일회용처럼 소비된다. 2013년 중국 선전에서 만난 농민공 쭤메이는 아이폰 제조업체인 폭스콘 공장 노동자다. 소외노동으로 인한 자살을 방지하려 급조된 복지관의 도서실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근데, 열람실 도서는 기껏 몇 권뿐이고 게시판에 고문이라고 적힌 법률가가 누군지를 사회복지사도 모른다. 저임에 기생하는 폭스콘,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폭스콘을 싸고도는 정부, 외지 청년한테 고액임대료를 챙겨온 ‘벌집’ 소유자들이 후원을 자처하는 ‘복지판’에 호출돼 신이 났다. 두 평 남짓 쪽방살이에 기숙사보다 더 많은 임대료를 내면서 ‘자유’를 말한다. “기숙사에서는 속옷, 양말 외에 개인 빨래가 금지거든. 물 낭비가 심하다고 한꺼번에 걷어서 세탁 업체에다 맡겨, 동네에서 10, 20위안 주고 산 옷이면 상관없지만, 큰 맘 먹고 산 비싼 옷을 그렇게 맡길 수 없잖아.”
영국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한 장면. 인류학자 조문영은 ‘빈곤 레짐’이란 말을 통해 빈곤과 복지의 연합이 지배적 규범을 재생산하고 빈자에 대한 낙인과 폭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청년들도 다르지 않다. 한국해외봉사단, 월드 프렌즈 코이카 봉사단….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와 엔지오가 손잡고 벌이는 사업으로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미명도 덧댔다. 그 나라 경제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 해당국 언어를 습득해 취업용 경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유혹이다. ‘88만원 세대’, ‘엔(n)포 세대’로 지칭되는 청년의 몸은 글로벌 ‘빈곤 레짐’에 소환돼 저렴하게 소비된다. 가난한 지원국 어린이들과 브이 포즈를 취하면서 남반구가 북반구 자본의 투기장이자 식민지가 된다는 비판을 희석하는 구실을 한다. 사회공헌, 윤리적 자본주의, 이에스지(ESG·환경, 사회, 거버넌스) 경영 등 구호를 바꿔가며 거듭되는 기업의 빈곤마케팅, 혹은 빈곤의 산업화에도 청년세대는 자발타발 동원된다.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 정부와 기업의 개입이 보편화하면서 전선이 모호해지고 있다. 사스, 에볼라, 코로나19, 원숭이두창 등 인간과 동물 사이의 거리 두기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정은 복잡해진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활동가들이 빈민활동 초기에 보여준 ‘동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당장에 거창한 반전을 바라기보다 모두가 취약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빈곤에 맞선 비판, 저항과 함께(同) 머무르며 살아간다(居)는 감각과 의지를 벼릴 일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빈곤은 과정에서 오롯이 드러나고, 끊임없이 드러내 기워야 하는 과제일 수밖에 없는 점에서 ‘빈곤 과정’이란 지은이의 호명은 중의적이다.
임종업 <토마토뉴스>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