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인류학자 애나 마친의 연구
생존 위한 네트워크 만들려는 욕망
‘버금 가족’에 대한 사랑인 우정부터
반려동물, 신에 대한 사랑까지…
생존 위한 네트워크 만들려는 욕망
‘버금 가족’에 대한 사랑인 우정부터
반려동물, 신에 대한 사랑까지…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사랑이 어떤 것이다 정의하기보다, 사랑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펴보는 데 집중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진화인류학자, 사랑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다
애나 마친 지음, 제효영 옮김 l 어크로스 l 1만8800원 “사랑은 생존이다.”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제1장 첫 문장이다.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나의 경우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는 궁금증이 완독의 동력이 됐다. 생존이란 잘 살아남아 차세대에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 그러자면 든든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미성숙 상태로 태어나기에 그렇고 협력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네트워크 동심원은 3배수로 늘어나 최대 150에 이른다는 ‘던바 법칙’에 따른다. ①부모, 파트너, 자녀, 절친 등 ‘중심 지지 세력’(5명) ②술, 영화, 외식 등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며 어울리는 ‘공감집단(15명)’ ③확장된 의미의 가족과 친척, 직장동료 등 ‘친밀한 집단’(50명) ④한 해 한 번쯤 만나는 ‘아는 사람’(150명). 군대와 흡사하다. 특수부대(5명), 분대(14명), 소대(45명), 중대(150명), 대대(300~800명). 양질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데, 그게 일종의 사랑이라는 거다. 그때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베타엔도르핀이 면역체계를 강화해 건강한 유전자를 만든다. 지은이는 사랑을 생물학적 뇌물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 ‘사랑 이야기’에 별 기대 안 했다.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에로스,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필리아, 성스러운 아가페 따위로 시작하면 던져버리려 했다. 책 중간쯤에 지역별 문화적 제약에 따라 사랑의 정의가 달라진다는 이야기 가운데 한 단락 등장하기는 한다. 지은이 애나 마친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이자 진화인류학자. (‘던바 법칙’의 던바는 옥스퍼드대 동료교수 로빈 던바.)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 없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관심 없다. 영국인 자존심일까, 사랑을 ‘러브’ 단어 하나로 퉁친다. 미국 작가들이 모질게 우려먹는 짝짓기, 불륜 얘기? 그것도 사랑의 일종이기에 일부 나오기는 한다. 진심 진화인류학적 접근이기에 무심함이 대담함으로 비친다. 오로지 경험, 인터뷰, 실험과 학계의 연구 성과 종합이다. 그럼에도 높은 가독성은 촘촘한 구성과 맛깔스런 담론, 군살 없는 문장에서 온다. ‘사랑은 생존이다’는 ‘생존은 (갈증을 느낄 때 물을 갈구하는 것과 같은) 욕구다’라는 명제로 이어진다. 그럼으로써 ‘사랑은 생리적 욕구다’라는 논리가 완성된다. 사랑은 감정의 영역에 속한다는 통념을 뒤집는 논증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사랑의 스펙트럼을 넓혀간다. 던바의 동심원을 거멀못으로 까치집 짓듯이. 어차피 짝짓기부터. 수컷의 경제력, 암컷의 가임력을 교환하는 절차라는 게 진화론적 설명이다. 여성의 건강한 생식력 지표로 치는 허리둘레와 엉덩이둘레의 비율 0.7. 남성성의 이상적 지표로 치는 어깨둘레와 허리둘레의 비율 1.4. 양성 모두에 해당하는 몸과 얼굴의 대칭성 따위.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경제력을 갖게 되고 피임약이 널리 쓰이는 지금도 그 설명은 힘이 있다. 하지만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추세, 짝짓기와 후속 출산, 양육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진 장수시대에 이를 스치듯 넘어가는 지은이의 태도, 마음에 든다.

진화인류학자인 애나 마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가까운 인간관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며, 특히 부성애 연구에 있어 독보적인 선구자로 꼽힌다. 애나 마친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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