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오웰이 심은 장미에서 찾아낸 이상주의, 헌신, 기쁨…

등록 2022-12-02 05:00수정 2022-12-02 10:34

리베카 솔닛의 책 두 권 나란히
장미 심고 정원 가꿨던 오웰 좇아

“영혼 파괴하는 침식력 반대하는 힘”
미국 서부 탐사 담은 ‘야만의 꿈들’도

2017년 방한해 한국 독자들과 만났던 리베카 솔닛의 모습. 반비 제공
2017년 방한해 한국 독자들과 만났던 리베카 솔닛의 모습. 반비 제공

오웰의 장미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l 반비 l 2만원









야만의 꿈들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양미래 옮김 l 반비 l 2만5000원

‘사에클룸’이라는 에트루리아 단어가 있다. 사에클룸은 그 자리에 있는 가장 나이 든 사람이 산 시간의 길이를 묘사하는 말이라고 한다. 무엇인가가 살아 있는 기억 속에 머무는 시간의 길이를 뜻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오웰의 장미>에서 리베카 솔닛은 이렇게 예를 든다. “스페인내전에서 싸운 마지막 사람 또는 마지막 나그네비둘기를 본 마지막 사람이 가버리면 그 사에클룸도 저문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걷기의 역사>를 비롯한 그의 논픽션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데, 이번에 나란히 나온 <오웰의 장미> <야만의 꿈들>을 읽으면 이 책들이 리베카 솔닛이라는 사에클룸을 후대에 전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이 험난했던 세계사의 순간을 관통해 살면서도 장미와 과실수를 심어 “미래를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무엇으로, 최초의 핵폭탄이 투하된 이듬해에도 여전히 어느 정도 신뢰를 걸 만한 무엇으로” 바라보았듯이 말이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03~1950).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웰의 장미>는 조지 오웰이 장미를 심었다는 행위를 출발점으로 하여 거기서 뻗어나가는 일련의 탐구다. 조지 오웰의 부모가 원했던 대로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는 대신 글쓰기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을 추구하겠다는 결심을 지지해 준 이모, 폐 질환에서 회복되던 시기에 기록했던 달걀 생산량과 후일 <동물농장>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가축들의 기질을 경험했던 전원생활, 오웰의 고조부가 재산을 증식했던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농장과 당시 서인도제도에서 노예가 된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잔혹한 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조지 오웰의 장미를 둘러싼 세계를 덤불처럼 빽빽하게 구축해나간다. “오웰에게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너무나 많은 것이 언어에 있었다. 그는 모든 계약의 핵심이 되는 계약으로서의 언어에 열정적으로 투신했다.”

영국 월링턴에서 염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는 오웰의 모습. 사진 D.콜링스(1939). 반비 제공
영국 월링턴에서 염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는 오웰의 모습. 사진 D.콜링스(1939). 반비 제공

이러한 사유가 오웰의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일 리 없다. 리베카 솔닛은 썼다. “권위주의자들은 진실과 사실과 역사를 무찔러야 할 경쟁 체체로 본다.” 하지만 오웰이 묘사하고 비난한 현상들을 그에 비견할 만한 우리 시대의 현상에 연결짓는 작업이 이 책의 목표는 아니다. 리베카 솔닛은 조지 오웰의 서평과 문학 에세이에서 여성 작가들이 거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넌지시 언급하면서도 위선과 회피를 혐오한 결과 작가로 살아가게 된 그의 삶을 찬찬히 짚는다. 이상주의와 헌신. “그가 소중히 여기고 욕망했던 것, 욕망 그 자체와 즐거움과 기쁨에 대한 긍정적 평가, 그리고 그것들이야말로 전체주의 국가와 영혼을 파괴하는 그 침식력에 반대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말이다.

아들과 함께한 오웰의 모습. 사진 버넌 리처즈. 1945. 반비 제공
아들과 함께한 오웰의 모습. 사진 버넌 리처즈. 1945. 반비 제공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가 2021년작이라면 <야만의 꿈들>은 2014년에 20주년 기념판이 나온 책이다. 책의 부제는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로, 네바다 핵실험장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비롯한 장소를 통해 책임감있는 미국 서부 주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묻고 탐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솔닛은 핵실험장으로부터 글쓰는 법을 배웠다고 썼다. 이 작업 이전까지 저널리즘적, 비평적, 시적 글쓰기를 개별적으로 수행했다면 이 책에 이르러 그 세 가지를 하나로 통합했다는 것이다. <야만의 꿈들>은 <걷기의 인문학>을 낳았으며, <어둠 속의 희망> 역시 딸 같은 책이다. 솔닛의 저서들 간의 관계도를 그리다 보면, <야만의 꿈들>에서 시작된 이런 통합적 글쓰기는 <오웰의 장미>에서 완성형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이다혜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