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일서가’는 아름다울 가(佳), 날 일(日) 자를 쓰는 안동 가일마을에 자리잡은 한옥책방이다. 2019년 가을, 마을의 서쪽 정산 아래 위치한 안동시문화유산 제25호 ‘노동재사’ 건물을 다듬어 책방을 마련했다. 250여년 전 이곳은 평생 지행(知行)을 추구했던 학자 병곡 권구 선생을 기리며 위패를 모시던 곳이었고, 100년 전에는 누구나 함께 잘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자주독립을 꿈꿨던 독립운동가 막난 권오설 선생이 설립한 ‘원흥학술강습소’의 공간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마을 아이들의 교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니, 이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행적들은 책방에 담고자 한 모든 의지들을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새 이곳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겨울의 초입이다. 책방을 열며 이웃과 함께 글을 쓰고 책을 만들자는 작은 목표로 ‘글 쓰는 책방’이라는 덧글을 조심스레 붙였다. 2019년 겨울 첫 번째 책을 시작으로 어느새 여덟 권의 책이 출판되어 서가에 꽂혀 있다. 아이들이 쓴 <매일의 글쓰기: 나를 쓰다> 일곱 권과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한 이웃들의 글을 엮은 <안동거기: 나는 안동에 삽니다>이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아름답고 오래된 한옥에서만큼은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었으면 했고, 가일서가가 그런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엮인 책에는 참여한 이들만큼이나 다양하고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책방을 찾은 손님들을 만난다.
가일서가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
오늘도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로 차들이 들어온다. 연인, 친구, 가족 혹은 홀로 두 칸짜리 작은 방에 들어와 각자의 책을 고른다. 잘 길들여진 대청에 앉아 책을 읽다 기와 사이로 펼쳐진 하늘을 보다 때론 대청 위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계절과 시간마다 다른 새들의 지저귐을 배경 삼아, 손님들과 함께 각자의 책을 읽다 보면 이토록 사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시골 마을에 책방을 열고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책방은 제 모습을 갖추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토요일이면 꼬박꼬박 책을 사러 와 책방의 매출과 안위를 걱정하는 단골손님, 할인도 무료배송도 없는 시골 책방에 택배비를 추가로 지출하면서도 굳이 책을 주문해주는 먼 곳에 계신 손님, 매주 글쓰기 모임을 하러 어둑한 시골길을 달려오는 글벗님들, 조용한 시골마을에 한 줄기 햇살 같은 소음을 선물해 주는 어린이 손님들, 날씨가 좋은 날엔 서가에 꼭 와야 할 것 같다며 서울에서 안동까지 달려오는 분들이 있다.
이 오래된 한옥을 쓸고 닦고 책을 들여놓는 일이야 남편과 내가 한다지만, 실상 이곳은 이렇게 많은 분들과 함께 꾸려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깊은 시골마을 책방을 찾아주는 아름다운 이들과 함께 말이다.
안동/글·사진 김현정 가일서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