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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현대철학의 다섯 구획

등록 2022-12-16 05:00수정 2022-12-16 11:07

현대 철학의 최전선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박성관 옮김 l 이비(2022)

함부로 발을 디딜 데가 아니었다. 천천히 소요하면서 되새김질하는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그곳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이었다. 각 진지의 작전이 어떻게 펼쳐지고, 전황은 어떤지 짐작해야 대강이나마 판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최전선이었다. 주로 고전만 읽다보니 우리 시대의 화두에 철학은 어떻게 대꾸하는지 궁금해 펴든 책이 <현대 철학의 최전선>이었다. 만만히 보았다 큰코다친 격이다.

지은이는 현대 철학의 진영을 다섯 구획으로 나누었다. 공정한 사회의 근거를 다루는 정의론, 어떻게 하면 타자와 서로 인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승인론, 자유의지는 환상인가를 묻는 자연주의, 인공지능이 결국에는 인간의 마음작동까지도 습득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는 마음철학, 요즘 부쩍 눈에 띄는 메이야수와 가브리엘이 포진한 새로운 실재론이다. 지은이는 백가쟁명식으로 각 진영의 철학을 풀이해준다. 대표적인 철학자를 소개한 다음 이에 맞서는 철학자가 등장한다. 그러고는 진영 내의 합종연횡을 보여준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샌델 덕에 널리 알려진 정의론만 보더라도 그렇다. 포문을 연 것은 롤스. 여기에 후생경제학파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공동체주의가 맹공을 펼친 것은 널리 알려졌다. 지은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확산된 전투양상을 보여준다. 아마르티아 센과 마사 누스바움이 ‘잠재능력’이란 신무기로 롤스를 맹공했다. 잠재능력이란 “개인이 기본재를 충분히 활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을 뜻한다. 롤스가 말한 격차원리에 따라 재화를 나누더라도 잠재능력이 없으면 자신이 바라는 ‘선의 구상’을 추구할 수 없다. 센은 장애인을, 누스바움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여성을 비교해 입증했다. 예상치 못한 연합군의 형성이 특히 흥미로웠다. 롤스는 명확한 교리가 있는 종교를 포괄적 교설이라 하고, 그 교의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기본적인 가치나 정의의 구상을 공유하는 것을 일러 중첩적 합의라 했다. 공공적 이성을 공유한지라 가능한데, 바로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가 우군으로 등장한다. 그이야말로 의사소통의 합리성에 따른 숙의정치론을 펼친 철학자이지 않던가.

지은이가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대목 때문에 현대철학의 골격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한 듯싶다. 그 하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었다. 플라톤처럼 보편적인 이데아나 규범을 상정하거나,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보편과 특수 또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 했다. 달리 말하면, 원인과 이유 가운데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철학의 물줄기가 갈라졌다. 원인은 “어떤 행위를 특정한 물리적 인과관계 속에 위치 짓는 것”이고, 이유는 “규칙, 관습, 규약, 타인의 기대 등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위치 짓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과학의 최신 성과를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이른바 물리주의는 이 성과를 유일한 잣대로 삼는데, 이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사유의 등고선이 높다 보니 마치 고지전을 지켜본 듯싶다. 그러니 내용을 다 이해하기란 난망한 노릇이다. 그래도 보람은 있었다. 아는 척하는 오만과 알고자 하지 않는 게으름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철학은 그래서 ‘등에’인 모양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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