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1: 천문학의 부흥과 천지학의 제창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2: 지동설의 제창과 상극적인 우주론들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김찬현‧박철은 옮김 l 동아시아 l 각 권 2만3000원
야마모토 요시타카(81)는 독학으로 놀라운 업적을 쌓은 일본의 과학사 연구자다. 2003년 출간한 <과학의 탄생>에서 시작해 <16세기 문화혁명>(2007)을 거쳐 2014년 펴낸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 야마모토의 명성을 높인 과학사 연구의 걸작이다. 이 세 종의 책 가운데 <과학의 탄생>과 <16세기 문화혁명>은 2005년과 2010년에 각각 번역‧출간된 바 있다. 근대 과학사 연구의 완결편에 해당하는 3권짜리 대작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은 2019년 제1권이 번역된 데 이어 이번에 두 번째 권이 한국어로 나왔다. 마지막 권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제3권까지 나오면 야마모토의 근대 과학사 3부작이 완역되는 셈이다.
1941년 태어난 야마모토는 1960년 도쿄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야마모토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수학과 물리학 공부에만 몰두했다. 변화는 1964년 대학원에 진학한 뒤 일어났다. 정치에 눈을 뜬 야마모토는 박사과정 3년차에 베트남전쟁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이어 급진좌파 학생운동단체 전공투(전학공투회의)의 도쿄대 의장을 맡아 ‘도쿄대 투쟁’을 이끌었다. 1969년 체포돼 수감생활을 한 야마모토는 출감 후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동료들 사이 평가로만 업적이 결정되는 학자 세계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 밖으로 나간 야마모토는 재야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했고 2000년대에 들어와 근대 과학사 연구를 담은 대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뒤에는 <후쿠시마 일본 핵 발전의 진실> <나의 1960년대: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같은, 일본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저서도 내놓았다.
야마모토의 근대 과학사 3부작은 ‘왜 유럽에서 근대 과학이 탄생했는가’라는 자신의 오래된 물음에 답하는 방대한 저작이다. 그 답변의 출발점이 되는 <과학의 탄생>은 ‘17세기 과학혁명’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 추적하는 책이다. 지은이의 초점은 ‘힘 개념의 등장’에 맞춰져 있다. ‘힘 관계’로 자연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인 도약점이 됐다는 것인데, 야마모토가 그 기초로 제시하는 것이 ‘자력’의 발견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사물을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자력이었다. 1600년 윌리엄 길버트가 <자석론>에서 지구가 자력을 지닌 일종의 거대한 자석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이어 1609년 요하네스 케플러는 태양이 자력과 같은 힘으로 행성을 잡아둔다고 주장해 논의를 확장했다. 케플러의 주장을 이어받아 아이작 뉴턴이 1687년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천체들 사이의 힘 곧 중력이라는 개념을 끌어냈다. 자력의 보이지 않는 힘을 통해서 중력이라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힘을 찾아낸 것이 17세기 과학혁명을 낳은 것이다.
천체의 타원운동을 밝힌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위키미디어 코먼스
근대 과학사 3부작의 두 번째 책인 <16세기 문화혁명>은 17세기 과학혁명을 예비한 16세기의 문화적 지각변동을 탐사하는 책이다. 그동안 과학사 책들은 14~15세기 르네상스를 통해 고대 과학이 부활했고 이것이 17세기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고 기술하고 끝났다. 야마모토의 책은 빈 공간처럼 남아 있던 16세기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17세기 혁명의 토대를 찾아낸다. 이 책에서 특히 야마모토가 주목하는 것이 장인‧화가‧상인‧선원 같은 일하는 사람들이다. 고급 인문주의 교육을 받지 않은 이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 현장에서 실험과 관측으로 자연 현상을 탐구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펴냈던 것인데, 17세기 과학혁명은 이 사람들이 일으킨 문화혁명을 동력으로 삼은 것이었다. 히말라야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이 5000미터에 이르는 고원 위에 솟아 있듯이 17세기의 천재들, 곧 갈릴레이‧데카르트‧뉴턴과 같은 물리학의 거인들은 이 평범한 사람들이 일으킨 지각변동 위로 솟은 산이었던 것이다.
지동설을 제창한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위키미디어 코먼스
근대 과학사 3부작을 완결하는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은 전작들의 논의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저작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고대 우주론과 천문학이 부활한 뒤, 15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초반에 이르는 150여년 동안 천체 연구에서 벌어진 드라마틱한 세계관의 변혁을 면밀하게 살핀다. 이 시기 한가운데 있는 것이 1543년에 출간된 코페르니쿠스 필생의 작품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다. 코페르니쿠스의 그 책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우주관의 일대 전환을 이룬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 유럽인의 천체관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천체가 원운동을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고대 천체론을 해체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천체가 회전한다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여기서 핵심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면 전통 세계관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 곧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천체들이 돌고 그 외곽을 단단한 천구가 둘러싸고 있다는 우주론이 붕괴하고,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눈으로 관측하는 새로운 천문학이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새 이론이 모든 것을 혁파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학자들처럼 코페르니쿠스는 천체가 완전한 ‘등속원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천체가 똑같은 속도로 태양을 원의 형태로 돈다고 본 것이다. 60여년 뒤 케플러는 <신천문학>(1609)에서 관측 자료를 통해 태양의 행성이 달걀 모양의 타원운동을 하며, 근일점에서 속도가 높아졌다가 원일점에서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모든 것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고대 이래 자연학적 관념을 해체했다. 천체의 타원운동을 설명하려면 새로운 동역학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타원운동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힘을 설정해야 한다. 케플러가 암시한 그 힘을 찾아내 만유인력 법칙으로 제시한 사람이 뒷세대 뉴턴이었다. 근대 과학혁명은 15세기 이래 150여년 동안 이루어진 세계관의 전환 속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