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시집 <지옥처럼 낯선>
1995년 3월 초에 하종오(52) 시인은 <쥐똥나무 울타리>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바 있다. 쥐똥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강화 섬의 농가에 1년 동안 자신을 가둔 상태에서 만난 야산과 논밭과 무덤과 갯벌과 노을과 바람의 근황을 기록한 시집이었다. 그로부터 11년, 그 사이 몇 권의 시집을 더 거쳐 그는 새 시집 <지옥처럼 낯선>(랜덤하우스중앙)을 펴냈거니와, 두 시집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지.
새 시집의 배경은 서울로 대표되는 도시의 “마케팅적인 삶”(‘시인의 말’)이다. 강화와 서울의 거리가 멀다고는 하기 어려울 게다. 그렇지만 강화대교 또는 초지대교와 김포 들을 사이에 두고 훤히 뚫린 자동차 길로 연결된 두 곳의 속내인즉 얼마나 천양지차인지.
“1번 말은 2번 말보다 빨리 달리려 하고 2번 말은 3번 말보다 빨리 달리려 하고 3번 말은 4번 말보다 빨리 달리려 하고(…) 9번 말은 1번 말보다 빨리 달리려 하고”(<경마장에서> 부분)
시집의 맨 앞에 실린 <경마장에서>는 이상의 <오감도 - 시 제1호>를 떠오르게 한다. 이상의 시에서 무서워하던 ‘13인의 아해’는 하종오씨의 시에서 남보다 빨리 달리려 하는 아홉 마리의 말로 바뀌어 있다. 1번 말에서 순서대로 9번 말을 거쳐 다시 1번 말로 돌아오는 이 순환의 고리는 건강한 경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악순환적 무한경쟁의 양상을 띤다. 그리고 그 효과는 <오감도>의 경우와 다르지 않은 무서움 또는 공포로 귀결된다. 이 시의 경마장이 경쟁과 도박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경마장에서>는 시집 <지옥처럼 낯선> 전체의 기조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시집 <지옥처럼 낯선>은 17편의 ‘마케팅 에피소드’ 연작과 네 편의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연작, 그리고 아홉 편의 노숙자 시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마케팅과 폐쇄회로 텔레비전과 노숙자가 도시적 삶의 음울한 풍경이요 부정적 표상임은 물론이다.
“서른 줄 사내는 골목에서 이불을 주워 왔다/마흔 줄 사내는 폐차장에서 담요를 주워 왔다/오십 줄 사내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카펫을 주워 왔다”(<지옥처럼 낯선> 첫 연)
다른 시들에서도 도시적 삶은 철저한 고독과 소외, 물화와 비인간화, 수단과 목적의 전도처럼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면모로 나타난다.
“서성거리는 무수한 비밀번호들 사이에서/너는 비밀번호로 서성거리고/속삭이는 무수한 비밀번호 사이에서/너는 비밀번호로 속삭이고/이익을 계산하는 무수한 비밀번호들 사이에서/너는 비밀번호로 이익을 계산한다”(<비밀번호> 부분)
그런 점에서 <시내 동물원>이라는 시에서 노숙자들이 멧토끼와 하늘다람쥐, 순록, 원숭이, 왜가리, 산양처럼 비교적 호감을 주는 동물군으로 묘사되는 반면, 노숙자가 아닌 바쁜 생활인들이 “먹이 찾는 들개 떼”에 비유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자본주의적 경쟁의 기제에서 퉁겨져 나온 노숙자들이 그 안에 몸 담고 있는 이들보다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대접을 받는 것이다. 시집의 뒤쪽에는 ‘지옥처럼 낯선’ 도시에서 반성하는 자로서의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시인 자신의 일상 속 깨달음을 노래한 시편들이 배치되었다. 그 가운데 한 편 <같이 쉬다>는 귀갓길에 아들을 만나 동네 놀이터에 앉았다 가는 시간에서 우주적 질서와 연대감을 건져 올린 작품이다. “이 세상으로 돌아올 때도/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다 만나서/어깨 기대고 같이 잠시 쉬다가/부자의 연을 맺었는지도 모를 일/어쩌면 이렇게/어깨 기대고 같이 오래 쉬다가/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며/이 세상을 떠나가야 할지도 모를 일”(<같이 쉬다>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병률 시인 제공
그런 점에서 <시내 동물원>이라는 시에서 노숙자들이 멧토끼와 하늘다람쥐, 순록, 원숭이, 왜가리, 산양처럼 비교적 호감을 주는 동물군으로 묘사되는 반면, 노숙자가 아닌 바쁜 생활인들이 “먹이 찾는 들개 떼”에 비유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자본주의적 경쟁의 기제에서 퉁겨져 나온 노숙자들이 그 안에 몸 담고 있는 이들보다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대접을 받는 것이다. 시집의 뒤쪽에는 ‘지옥처럼 낯선’ 도시에서 반성하는 자로서의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시인 자신의 일상 속 깨달음을 노래한 시편들이 배치되었다. 그 가운데 한 편 <같이 쉬다>는 귀갓길에 아들을 만나 동네 놀이터에 앉았다 가는 시간에서 우주적 질서와 연대감을 건져 올린 작품이다. “이 세상으로 돌아올 때도/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다 만나서/어깨 기대고 같이 잠시 쉬다가/부자의 연을 맺었는지도 모를 일/어쩌면 이렇게/어깨 기대고 같이 오래 쉬다가/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며/이 세상을 떠나가야 할지도 모를 일”(<같이 쉬다>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병률 시인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